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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억할만한 지나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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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http://kbeom.com</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07 Aug 2008 23:33: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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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억할만한 지나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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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http://kbeom.com</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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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너무 스파르타식이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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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892623182.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04&quot; width=&quot;410&quot;  /&gt;&lt;/div&gt;&amp;nbsp;&lt;A href=&quot;http://cafe.daum.net/drkimz&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달마실&lt;/FONT&gt;&lt;/A&gt; 놀러 갔다가 주워온 사진(엄마는 너무 스파르타식이야)&lt;/P&gt;&lt;/DIV&gt;
&lt;P&gt;원칙과 상식이 필요 없게 된 사회일수록 국민들은 피곤하다. 신경 쓸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은 공부해야만 하고 원칙과 상식을 다른 이들에게 논리적으로 설파해야 한다. &lt;/P&gt;
&lt;P&gt;황우석 죽이기 사태 때 많은 국민들은 그야말로 줄기세포 전문가가 되었다. 또한 민주주의를 시궁창에 처박은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많은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스파르타식으로 배워나가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민주주의 원칙을 말하게 되었고, 언론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잔재된 친일세력들의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 기본권이 어떻게 유린당하는지, 환율정책이 미치는 나라 경제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등등 국민 개개인은 언론학자, 외교전문법률가, 의료전문가, 경제학자, 헌법학자 등등의 전문가로 육성되고 있단 말이다. 이게 스파르타 아니면 뭐냐. &lt;/P&gt;
&lt;P&gt;아 씨바.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거냐. &amp;nbsp; &lt;/P&gt;
&lt;P&gt;&lt;div id=&quot;jukeBox246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46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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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질투는 나의힘</category>
			<category>김광석</category>
			<category>달마실</category>
			<category>두바퀴로 가는 자동차</category>
			<category>스파르타</category>
			<category>이명박</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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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7 Aug 2008 23:27: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부시의 방문을 보고</title>
			<link>http://kbeom.com/tc/243</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2076838124.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10&quot; width=&quot;410&quot;  /&gt;&lt;/div&gt;미국에 대한 외교 전략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lt;/DIV&gt;&lt;BR&gt;
&lt;P&gt;이명박은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부시와의 회담을 브리핑하면서 &lt;FONT color=#6699ff&gt;&lt;A href=&quot;http://bopboy.tistory.com/entry/부시와-명박의-개그-둘이-지금-뭐하는-걸까&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부시원숭이에게까지 뻥을&lt;/FONT&gt;&lt;/A&gt; &lt;/FONT&gt;칠 줄이야. 글로벌 호구에서 글로벌 뻥장군까지 그의 글로벌화는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 대통령으로 있는 국민 한사람으로 참담하기만 하다. &lt;/P&gt;
&lt;P&gt;나는 인터넷 최고의 논객으로 김동렬 선생을 꼽는 것에 단 0.0001초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시사 칼럼을 읽으면 늘 무협지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짧은 문장 구조와 구조 사이를 연결해 주는 논리적 긴장감이 그의 매력이다. 돌이켜보면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앉은 자리에서 전부 읽어&amp;nbsp; 내려간 것은 그의 책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lt;/P&gt;
&lt;P&gt;오늘 부시 방문을 보고 예전에 읽었던 학문의 역사란 책을 다시 들춘다. 부시에 대한 그의 일갈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부시의 재집권과 그의 뻘짓에 대해 김동렬 선생의 결론은 참된 지성이 없다는 것이다. 핑계에만 열을 올리지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서와 너무 닮았다. &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참된 지성이란 무엇인가? &lt;/STRONG&gt;&lt;/P&gt;
&lt;P&gt;21세기의 비극은 이 세계에 참된 지성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이 나라에 큰 어른이 없고 이 세계에 참 스승이 없다. 전지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없다. &lt;/P&gt;
&lt;P&gt;부시의 침략 소동을 고도 지식 집단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 고작 한다는 것이 부시탓하기다. 부시를 탓한다는 것은 부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의미다. 그것은 부시를 대등한 경쟁의 상대로 본다는 거다.&lt;/P&gt;
&lt;P&gt;쇠귀에 경 읽기도 유분수지 부시, 체니, 럼즈펠트 이런 자들이 도무지 말이 통하는 대화의 상대란 말인가? 이 악당들은 굴다리 밑에 집합시켜 놓고 굴밤을 한대 씩 먹여준다면 몰라도 책임을 논할 대상은 못 된다.&lt;/P&gt;
&lt;P&gt;우리를 탈출한 맹수는 물리력으로 통제할 대상이지 합리적인 대화의 상대는 아니다. 물론 지식 집단에 그들을 통제할 물리력이 있을 리 없다. 왜 지식은 힘을 잃었나? 지식은 왜 대중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나?&lt;/P&gt;
&lt;P&gt;지적 게으름이다. 성찰의 빈곤이다. 왜 아무도 내 탓이라 말하지 않을까? 지성이 문제다. 바야흐로 지성이 죽은 시대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 깜깜한 밤바다를 등대도 없이 별빛도 없이 항해하기.&lt;/P&gt;
&lt;P&gt;부시 탓하기나 하고 있다는 것은 구소련의 붕괴, 동유럽의 민주화 도미노, 냉전의 해체, 중국과 베트남의 개방,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같은 역사의 큰 흐름을 예상하지 못하고 뒷북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lt;/P&gt;
&lt;P&gt;역사의 큰 물줄기를 내다본 지성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세상은 바뀌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20세기는 그 한 명을 갖지 못했다. 20세기 인류의 집단 지성은 그 지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lt;/P&gt;
&lt;P&gt;왜 예상하지 못했나? 왜 서구 지식인들은 구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나? 부끄러워해야 한다. 구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하고 이후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식이 권위를 잃고 있는 것이다.&lt;/P&gt;
&lt;P&gt;이미 권위를 잃었으니 부시 원숭이가 집권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지식의 거듭된 오판으로 인한 권위상실이 원숭이 무리의 집권을 도운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인정해야 한다. 지식의 실패다.&lt;/P&gt;
&lt;P&gt;혁명이라는 이름의 휴거 날짜나 세던 지식인들, 그리고 여전히 휴거를 기다리는 좌파들. 점점 꼴이 우습게 되어가고 있다. 원숭이들의 득세는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게으름의 결과이다. &lt;/P&gt;
&lt;P&gt;정신 차려야 한다. 지식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서구중심의 철학계, 강단학계, 언론계, 문화계, 교수니 석학이니 하는 자들. 바로 당신들이 원숭이의 손에 폭탄과 총을 쥐어준 것이다. 성찰해야 한다.&lt;/P&gt;
&lt;P&gt;김동렬. &lt;A href=&quot;http://drkimz.com/book_03.php&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학문의 역사&lt;/FONT&gt;&lt;/A&gt;&amp;nbsp;중에서 &lt;/P&gt;&lt;/BLOCKQUOTE&gt;&lt;BR&gt;</description>
			<category>질투는 나의힘</category>
			<category>김동렬</category>
			<category>부시</category>
			<category>이명박</category>
			<category>학문의 역사</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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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43#entry243comment</comments>
			<pubDate>Wed, 06 Aug 2008 22:00:1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이 그리움의 질량은</title>
			<link>http://kbeom.com/tc/241</link>
			<description>&lt;P&gt;잘 쓰고 싶다는 간절함이 늘 있다. 생각을 담는 그릇이 글이기 때문에 생각이 올바르고 논리 정연해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많이 읽고 늘 생각하고 잊혀지기 전에 어딘가에 메모하고 하는 훈련이 필요함에도 마음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못한다. &lt;/P&gt;
&lt;P&gt;&lt;A href=&quot;http://kbeom.com/tc/21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기억할만한 지나침 시즌 2&lt;/FONT&gt;&lt;/A&gt;에 들어오면서 자신에게 약속한 것이 매일 포스팅 하나는 꼭 하는 거였다. 바쁜 낮시간은 피하더라도 밤늦은 시간에 숙제는 꼭 해야 함에도 바쁜 핑계로 점점 더 게을러 지기만 한다. &amp;nbsp;&lt;/P&gt;
&lt;P&gt;난 언제쯤 아래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성과 감성의 어울림이 이처럼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물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나로서는 꼭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욕심 나는 글이다. 그리움을 이처럼 간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lt;/P&gt;
&lt;P&gt;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019903181.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89&quot; width=&quot;410&quot;  /&gt;&lt;/div&gt;&lt;/P&gt;
&lt;BLOCKQUOTE&gt;
&lt;P&gt;몸은 쥐어짜 봐야&lt;BR&gt;각설탕 하나만큼의 당분과&lt;BR&gt;닭장 하나 칠할 수 있을 정도의 석회질과&lt;BR&gt;장난감 카메라 플래시 한방 터뜨릴 칼륨과&lt;BR&gt;감기약 일회분 정도의 마그네슘&lt;BR&gt;그리고, 성냥개비 2,200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인과&lt;BR&gt;비누 일곱 장을 만들 수 있는 지방으로&lt;BR&gt;기껏 이루어져 있다는데&lt;BR&gt;어디서 오는 것일까&lt;BR&gt;캄캄하게 앞산을 가로막는 &lt;/P&gt;
&lt;P&gt;&lt;STRONG&gt;이 그리움의 질량은....&lt;/STRONG&gt;&lt;/P&gt;
&lt;P&gt;문채인.&lt;/P&gt;&lt;/BLOCKQUOTE&gt;
&lt;P&gt;&lt;div id=&quot;jukeBox241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41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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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사랑을 말하다</category>
			<category>그리움</category>
			<category>문채인</category>
			<category>사랑</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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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41#entry241comment</comments>
			<pubDate>Tue, 05 Aug 2008 22:37:31 +0900</pubDate>
		</item>
		<item>
			<title>다행스러운 것은</title>
			<link>http://kbeom.com/tc/239</link>
			<description>&lt;P&gt;벌써 7월 말 휴가철이더군요. 휴가라 함은 노동의 대가로 치뤄지는 보상으로 풀이될 텐데 제대로 일한 것도 없이 일단 떠나는 저 같은 사람들은 뭥미? 하림 노래를 오랜만에 찾아서 듣다가 하루키 글이 생각나서 옮겨놓습니다. 인생이란 사랑이란 ... 답은 알고 있으면서 말하기는 싫은 몇 가지 것들...&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426189063.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40&quot; width=&quot;350&quot;  /&gt;&lt;/div&gt;&lt;/P&gt;
&lt;BLOCKQUOTE&gt;
&lt;P&gt;우리의 인생은 날마다 새로운 것과 대면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새롭고 낯선 것들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 몇 년 동안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질 수도 있고 하루 아침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강물이 흐르고 푸른 숲이 있던 마을이 개발되면서 고층 빌딩과 아스팔트 도로, 자동차의 물결로 변모할 수도 있다. 혹은 머나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서 낯선 환경과 문화를 접하게 될 수도 있다. &lt;/P&gt;
&lt;P&gt;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새롭고 낯선 세계에 대해 조금씩 익숙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나는 살과 뼈를 이 무겁고 습한 우주의 단층 속에 잠입시켜 나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느 상황 속으로도 자신을 동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어떤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않은 현실 속에 삼켜지고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인가는 그런 꿈이 존재했던 것조차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루키]&lt;/P&gt;&lt;/BLOCKQUOTE&gt;
&lt;P&gt;&lt;div id=&quot;jukeBox239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39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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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사랑을 말하다</category>
			<category>사랑</category>
			<category>여행</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category>하루키</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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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39#entry239comment</comments>
			<pubDate>Tue, 29 Jul 2008 01:38:19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노무현 &quot;외교는 이런 것이다.&quot;</title>
			<link>http://kbeom.com/tc/238</link>
			<description>&lt;P&gt;이명박 정부의 외교 전략은 실용외교라 하지만 실상 내용은 &#039;진도별 등신외교&#039;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정부의 외교 전략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나라별로 힘의 균형 관계를 고려해 첨예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뭔가 이끌어 내는 로드맵 시스템이 있어야 함에도 그들에겐 전혀 없다. &lt;/P&gt;
&lt;P&gt;미국 가서 국민의 건강주권이 뭔지도 생각해보지 않고 FTA 해달라고 매달리다 물먹고, 중국 가서 푸대접 받았다고 징징 데고, 일왕 면전에 깍두기 경례하다 밉보여 독도 분쟁의 빌미나 제공하고, 북한 냉각탑이 뽀사지는지 금강산에서 국민이 피살되어도 전화 한 통 넣어보지도 못하고, 결국 아세안안보포럼 가서는 국제적 개망신이나 떨고...아 씨바..이건 뭐 진도 나갈수록 이렇게 처참하니 그냥 문 걸어 잠그고 살수도 없고..&lt;/P&gt;
&lt;P&gt;혹시 휴가 중에 인터넷 하면 노무현 대통령 외교 전략이나 공부 좀 하지. 제발.&lt;/P&gt;&lt;BR&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objec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7,0,0,0&quot; width=&quot;420&quot; height=&quot;335&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 name=&quot;wmode&quot; value=&quot;transparent&quot;/&gt;&lt;param name=&quot;flashvars&quot; value=&quot;width=420&amp;amp;height=335&amp;amp;thumbsinplaylist=true&amp;amp;displayheight=315&amp;amp;overstretch=false&amp;amp;logo=&amp;amp;searchbar=false&amp;amp;linkfromdisplay=true&amp;amp;linktarget=_blank&amp;amp;file=/tc/plugins/GRZ_JWMediaPlayer/mkpl.php?list=1|%5bhttp%5dkr.%5b%5byoutube%5d%5d%2fwatch%3fv%3d1HjEHGe2oog|%5bhttp%5dkr.%5b%5byoutube%5d%5d%2fwatch%3fv%3d1HjEHGe2oog|%5bhttp%5dkbeom.com%2ftc%2fattach%2f1%2f2052005111.jpg||||%5bhttp%5dkbeom.com%2ftc|&quot;/&gt;&lt;!--[if !IE]&gt; &lt;--&gt;&lt;objec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transparent=&quot;yes&quot; data=&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 flashvars=&quot;thumbsinplaylist=true&amp;amp;displayheight=315&amp;amp;overstretch=false&amp;amp;logo=&amp;amp;searchbar=false&amp;amp;linkfromdisplay=true&amp;amp;linktarget=_blank&amp;amp;file=/tc/plugins/GRZ_JWMediaPlayer/mkpl.php?list=1|%5bhttp%5dkr.%5b%5byoutube%5d%5d%2fwatch%3fv%3d1HjEHGe2oog|%5bhttp%5dkr.%5b%5byoutube%5d%5d%2fwatch%3fv%3d1HjEHGe2oog|%5bhttp%5dkbeom.com%2ftc%2fattach%2f1%2f2052005111.jpg||||%5bhttp%5dkbeom.com%2ftc|&quot; width=&quot;420&quot; height=&quot;335&quot;&gt;&lt;p&gt;&lt;a href=&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gt;[Flash]&lt;/a&gt;&lt;/p&gt;&lt;/object&gt;&lt;!--&gt; &lt;![endif]--&gt;&lt;/object&gt;&lt;BR&gt;노무현의 정상외교, 24만 Km (출처 : &lt;A href=&quot;http://kr.youtube.com/watch?v=1HjEHGe2oog&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여기&lt;/FONT&gt;&lt;/A&gt;) (play를 지긋이)&lt;/DIV&gt;&lt;BR&gt;
&lt;TABLE style=&quot;TABLE-LAYOUT: fixed; WIDTH: 360px&quot; cellSpacing=1 cellPadding=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20px; PADDING-LEFT: 20px; PADDING-BOTTOM: 20px; PADDING-TOP: 20px; BACKGROUND-COLOR: #ececd9&quot; align=justify&gt;
&lt;P&gt;&quot;외교의 어떤 결과물도 &lt;BR&gt;우리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lt;BR&gt;그것이 제가 외교 전략을 선택하는 간단한 기준이고 원칙입니다.&quo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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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노무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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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명박</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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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38#entry238comment</comments>
			<pubDate>Sat, 26 Jul 2008 23:23:0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술 담배 그리고 ...</title>
			<link>http://kbeom.com/tc/237</link>
			<description>&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91304075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15&quot; width=&quot;320&quot;  /&gt;&lt;/div&gt;&lt;/P&gt;&lt;BR&gt;
&lt;TABLE style=&quot;TABLE-LAYOUT: fixed; WIDTH: 285px&quot; cellSpacing=1 cellPadding=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20px; PADDING-LEFT: 20px; PADDING-BOTTOM: 20px; PADDING-TOP: 20px; BACKGROUND-COLOR: #ececd9&quot; align=justify&gt;
&lt;P&gt;&lt;STRONG&gt;술 담배 그리고 사랑&lt;/STRONG&gt;&lt;/P&gt;
&lt;P&gt;누군가 내게 다가와 &lt;BR&gt;술 한잔을 권한다면 쾌히 받는다. &lt;BR&gt;지칠대로 마시면서 &lt;BR&gt;억울해 울고 &lt;BR&gt;심장의 뛰는 박동소리를 느끼고 싶어서이다. &lt;/P&gt;
&lt;P&gt;누군가 내게 다가와 &lt;BR&gt;담배 한 가치를 권한다면 쾌히 받는다. &lt;BR&gt;재가 되고 연기 흩어질 때까지 &lt;BR&gt;서럽게 울고 &lt;BR&gt;미친 듯이 긴 얘기를 털어 놓고 싶어서이다. &lt;/P&gt;
&lt;P&gt;누군가 내게 다가와 &lt;BR&gt;사랑을 권한다면 스스럼없이 도리질한다. &lt;BR&gt;나에게 사랑은 &lt;BR&gt;필요치 않은 선물이며, &lt;BR&gt;나에게 사랑은 &lt;BR&gt;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lt;BR&gt;아무런 느낌 없는 미소로 도리질한다. &lt;/P&gt;
&lt;P&gt;문향란.&lt;/P&gt;&lt;STRONG&gt;&lt;FONT color=#ff3399&gt;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lt;/FONT&gt;&lt;/STRONG&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lt;div id=&quot;jukeBox237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37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writeCode(getEmbedCode(&#039;/tc/script/jukebox/flash/main.swf&#039;,&#039;100%&#039;,&#039;100%&#039;,&#039;jukeBox2372Flash&#039;,&#039;#FFFFFF&#039;,&quot;sounds=/tc/attach/1/1311426942.mp3*!%EA%BD%83%EB%8B%A4%EC%A7%80+-+%EC%B0%BD%EC%82%B4+%EC%95%84%EB%9E%98+%EC%82%AC%EB%9E%91%EC%95%84_*&amp;amp;autoplay=1&amp;amp;visible=1&amp;amp;id=2372&quot;,&quot;false&quot;), &quot;jukeBoxContainer2372&quot;)//]]&gt;&lt;/script&gt;&lt;noscript&gt;&lt;a href=&quot;http://kbeom.com/attach/1/1311426942.mp3&quot;&gt;꽃다지 - 창살 아래 사랑아&lt;/a&gt;&lt;br/&gt;&lt;/noscript&gt;&lt;/div&gt;&lt;/P&gt;</description>
			<category>사랑을 말하다</category>
			<category>꽃다지</category>
			<category>담배</category>
			<category>문향란</category>
			<category>사랑</category>
			<category>술</category>
			<category>창살 아래 사랑아</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guid>http://kbeom.com/tc/237</guid>
			<comments>http://kbeom.com/tc/237#entry237comment</comments>
			<pubDate>Fri, 25 Jul 2008 23:58:4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비를 맞으면 생각나는 what&#039;s up</title>
			<link>http://kbeom.com/tc/236</link>
			<description>&lt;P&gt;대학교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광화문 경향신문사 11층에 자주 출몰하였다. 그 당시 청오회라는 연합 동아리 사무실이 그곳에 있었는데 2학년 말에는 청오회 편집부 식구들과 책을 만들기도 했고, 3학년 되어서는 중앙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곳에 자주 갔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려서 걸어가도 되는 데 난 항상 지하철 시청역에 내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이화여고를 지나 걸어다녔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10여 분이 흔치 않은 산책이라 여겨서 그런 모양이다.&lt;/P&gt;
&lt;P&gt;비가 오는 날&amp;nbsp; 우연히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듣게 된 &#039;what&#039;s up&#039;. 우산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전반부 어쿠스틱 기타의 화음이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물방울이 튀기며 내는 울림과 기타 반주의 맥놀이는 김기덕 씨의 나래이션과 더불어 한동안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그러고 멍하니 5분 동안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난다. &lt;/P&gt;
&lt;P&gt;늦은 밤 친구와 파전에 동동주를 한잔했더니 센치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구만.&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624517261.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98&quot; width=&quot;300&quot;  /&gt;&lt;/div&gt;&lt;/P&gt;
&lt;TABLE style=&quot;TABLE-LAYOUT: fixed; WIDTH: 300px&quot; cellSpacing=1 cellPadding=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20px; PADDING-LEFT: 20px; PADDING-BOTTOM: 20px; PADDING-TOP: 20px; BACKGROUND-COLOR: #ececd9&quot; align=justify&gt;
&lt;P&gt;&lt;STRONG&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What&#039;s up - 4 Non Blondes&lt;/FONT&gt;&lt;FONT face=Arial&gt; &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25 years and my life is still trying&lt;BR&gt;to get up that great big hill&lt;BR&gt;of hope for a destination&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I realized quickly when I knew&lt;BR&gt;I should that the world was&lt;BR&gt;made up of this brotherhood of man&lt;BR&gt;for whatever that means&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so I cry sometimes&lt;BR&gt;When I&#039;m lying in bed&lt;BR&gt;Just to get it all out what&#039;s in my head&lt;BR&gt;And I am feeling a little peculiar&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so I wake in the morning&lt;BR&gt;And I step outside&lt;BR&gt;And I take a deep breath &lt;BR&gt;And I get real high&lt;BR&gt;And I scream at the top of my lungs&lt;BR&gt;What&#039;s going on?&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I say hey hey hey hey&lt;BR&gt;I said hey what&#039;s going on?&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I try, oh my god do I try&lt;BR&gt;I try all the time in this institution&lt;BR&gt;And I pray, oh my god do I pray&lt;BR&gt;I pray every single day for a revolution&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so I cry sometimes&lt;BR&gt;When I&#039;m lying in bed&lt;BR&gt;Just to get it all out what&#039;s in my head&lt;BR&gt;And I am feeling a little peculiar&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so I wake in the morning&lt;BR&gt;And I step outside&lt;BR&gt;And I take a deep breath &lt;BR&gt;And I get real high&lt;BR&gt;And I scream at the top of my lungs&lt;BR&gt;What&#039;s going on?&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And I say, hey hey hey hey&lt;BR&gt;I said hey what&#039;s going on?&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quot;&#039;Comic Sans MS&#039;,&#039;sand&#039;&quot;&gt;25 years and my life is still trying&lt;BR&gt;to get up that great big hill of hope&lt;BR&gt;for a destination&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lt;div id=&quot;jukeBox236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36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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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의 기억들</category>
			<category>4 Non Blondes</category>
			<category>Whats up</category>
			<category>음악</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guid>http://kbeom.com/tc/236</guid>
			<comments>http://kbeom.com/tc/236#entry236comment</comments>
			<pubDate>Thu, 24 Jul 2008 23:52:4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내면으로의 전향(轉向)</title>
			<link>http://kbeom.com/tc/235</link>
			<description>&lt;BLOCKQUOTE&gt;
&lt;P&gt;어제는 13년이나 알고지낸 친구 녀석과 신도림에서 오랜만에 한잔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시원한 맥주를 꽤 많이 마신 모양이다. 오며가며 시간 때울려고 &lt;A href=&quot;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3630&amp;amp;CategoryNumber=00100101400200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책 한권&lt;/FONT&gt;&lt;/A&gt;을 가방에 넣고 갔는데 집에 와서보니 많은 부분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가는 길엔 분명 반 밖에 읽지 못했는데 어떻게 마지막 130페이까지 중요 부분에 줄이 그어지 있는지 세월이 흘러도 알콜 독서는 변함이 없다. &lt;/P&gt;&lt;/BLOCKQUOTE&gt;
&lt;P&gt;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은 것으로 유명한 보헤미아 태생의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게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 &#039;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039;에 대한 길을 일러준다. &lt;/P&gt;
&lt;P&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444608885.jpg&quot; width=&quot;146&quot; height=&quot;202&quot; /&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393536360.jpg&quot; width=&quot;122&quot; height=&quot;202&quot; /&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383011306.jpg&quot; width=&quot;147&quot; height=&quot;202&quot; /&gt;&lt;/P&gt;
&lt;P&gt;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그 무엇에 대한 근거가 자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뻗고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이루려는 그 무엇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깊은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을 골라 스스로 물어보고 &quot;난 그거 아니면 안돼&quot;라는 짤막한 말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열망에 근거한 당신의 삶은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충분히 표시되어야 하고 증거가 충분해야&amp;nbsp; 한다는 것이다.&lt;/P&gt;
&lt;P&gt;우리의 내면과 깊은 고독속으로 파고 들어가 삶의 샘물이 솟아오르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고, 그 원천에 도달하여 인생에서 이루려는 그 무엇이 꼭 이루어 져야 하는지의 스스로 물어보고, 물음에 대한 답이 명확해 지면 더이상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lt;/P&gt;
&lt;P&gt;그리고 당신의 모든 성장과 발전을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이어나가라고 말한다. 내면으로의 전향을 통하지 않고 자꾸만 바깥 세계만을 쳐다보고 무슨 보상이나 받을까 고민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조용한 시간에 은밀한 감정을 통해서나 답해질 수 있는 성질의 질문들을 외부로부터 답을 얻으려 할 때처럼 당신의 발전에 심각한 해가 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남의 의식하지 말고 스스로 결정한 무엇은 목숨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ff3399&gt;내 인생에서 목숨걸고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div id=&quot;jukeBox2351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351&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writeCode(getEmbedCode(&#039;/tc/script/jukebox/flash/main.swf&#039;,&#039;100%&#039;,&#039;100%&#039;,&#039;jukeBox2351Flash&#039;,&#039;#FFFFFF&#039;,&quot;sounds=/tc/attach/1/1208761264.mp3*!Paul+Pennell+-+Summer+christmas_*&amp;amp;autoplay=1&amp;amp;visible=1&amp;amp;id=2351&quot;,&quot;false&quot;), &quot;jukeBoxContainer2351&quot;)//]]&gt;&lt;/script&gt;&lt;noscript&gt;&lt;a href=&quot;http://kbeom.com/attach/1/1208761264.mp3&quot;&gt;Paul Pennell - Summer christmas&lt;/a&gt;&lt;br/&gt;&lt;/noscript&gt;&lt;/div&gt; &lt;/P&gt;&lt;BR&gt;</description>
			<category>일상의 기억들</category>
			<category>내면</category>
			<category>릴케</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guid>http://kbeom.com/tc/235</guid>
			<comments>http://kbeom.com/tc/235#entry235comment</comments>
			<pubDate>Wed, 23 Jul 2008 21:53: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30대 여자들의 건승을 위해서</title>
			<link>http://kbeom.com/tc/230</link>
			<description>&lt;P&gt;제 주위에는 30대 여자들이 많습니다. 여자친구가 많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학을 공유하고, 극장을 함께 쓰고, 대학로 허름한 소극장에서 같은 연극을 보고, 같은 최루탄에 취하고 같은 공간에서 살던 그들이 언젠가부터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lt;/P&gt;
&lt;P&gt;일찍 결혼한 사람들은 벌써 학부형 노릇을 하고 있고, 그러지 않은 대부분은 아직 사회에서 역할 분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20대를 같이 보내면서 저와 별반 다르지 않던 그들은 30대를 넘어서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lt;/P&gt;
&lt;P&gt;오랜만에 대학교 때 동아리에서 같이 뒹굴던 친구 녀석이 아이를 낳았다고 자랑을 합니다. 놀러 오라고 보챕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잘 지내는지. 쉽지 않은 30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30대 여자들의 삶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는 거만함에 또다시 자책합니다. &lt;/P&gt;
&lt;P&gt;잘 지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오래전 스크랩 해두었던 글을 잠시 올려놓습니다. 힘이 될지 모르지만..&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435247011.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84&quot; width=&quot;202&quot;  /&gt;&lt;/div&gt;&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자아 분열적인 30대 여자들의 건승을 위하여&lt;/STRONG&gt;&lt;/P&gt;
&lt;P&gt;30대 여자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하는 여자, 아이 기르는 여자, 출산 유보하는 여자, 아이 학수고대하는 여자, 결혼한 여자, 결혼 압력 받는 여자, 결혼 안 하겠다는 여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는 여자, 이혼 해버린 여자, 사표 낼까 말까 하는 여자, 재취업에 고심하는 여자, 창업 고민하는 여자, 사표 압력 받는 여자, 남자에 지쳐있는 여자, 아이 기르기에 지쳐있는 여자, 친구 만나는 것도 잊은 여자, 친구 낙으로 겨우 버티는 여자, 너무 신나게 사는 여자, 너무 좌절되어 있는 여자, 피곤에 절어서 잠자리조차 싫은 여자, 쇼핑 중독증에 걸린 여자, 겉보기 여유와 달리 뒤쳐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여자, 24시간 내내 쫓겨서 자신에 대한 생각조차 못하는 여자 등 등. &lt;/P&gt;
&lt;P&gt;징그러운 것은, 이런 다양한 상황의 대다수가 어느 여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30대 여자의 복합 상황이다. 한 가지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수많은 상황이 교차하니 얼마나 복잡한가. 그러니 그 많은 갈래 속에서 &#039;자아 분열적&#039;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lt;BR&gt;&lt;BR&gt;게다가 세상은 30대 여자에게 말도 많다.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집 장만해야지, 너무 늦었잖아, 너무 빠르잖아, 더 잘 해야잖아, 그만 둬야잖아 등 등. 20대 여자에게 주는 축복의 말, 격려의 말과는 달리 뭔가 침 돋은 말들이다. 찔리면 괜히 아프다. 괜히 찔리는 것 같다. 영화 &amp;lt;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amp;gt; 에서 샐리의 여자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말처럼, &#039;째각째각&#039; 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lt;/P&gt;
&lt;P&gt;바로 이래서 30대 여자들은 푸근하기 보다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노처녀 증후군이 아니라 30대 여자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자아 분열적이 아니라 아예 진짜 분열할 지도 모른다. 물론 공격적인 것이 백 배 낫다. 좌절을 안으로 누르고 실망을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만 접어두는 것보다는 공격적인 것이 훨씬 건강하다. &#039;내향 내(內)보다 &#039;외향 외(外)&#039; 할수록 진짜 분열할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공격적이라는 말이 싫으면 팽팽하게 바람넣은 공이라고 해도 좋겠다.) &lt;/P&gt;
&lt;P&gt;나의 30대도 그렇게 공격적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사방에서 내 뒷다리를 잡으려 드는 것 같고, 내 머리를 쑤셔 박으려는 듯 싶었고, 폐기물 처리하려는 듯 싶기도 했고, 내가 조금 움직임이 느려지면 금방 표가 나는 게 보여서 피곤했고, 주위에서 외형만 조명하려 드는 게 못마땅했고, 사회에서의 내 자리가 어디인가 고민했고, 몸과 정신과 마음이 다 팽팽한 긴장 상태였다. &lt;/P&gt;
&lt;P&gt;그렇게 팽팽했던 30대를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실제로 30대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아주 괜찮은 마흔살 성년(成年)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고 보면 말이다. 사십 대에는 조금 푸근해져보지 하고 생각했고, 하기는 실제로 사십대에는 나름대로 푸근해졌다. (고백하자면, 아주 &#039;쪼끔&#039;.) &lt;/P&gt;
&lt;P&gt;이런 자아 분열적인 30대 여자에 대해서는 아예 품평을 하지 않는 것이 맞을 듯싶다. &quot;괜찮지, 싹수있어, 멋져, 당당해, 근사해?&quot; 과연 어떤 말로 품평을 할 것인가. 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30대 여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30대 여자를 품평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다. 근사한 40대로 넘어갈 만큼 될성부른가? &quot;40대에 일하고 있지 않으면 전혀 일을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quot;라는 소신이 뚜렷한 나다운 협량한 기준이지만 혜량해 주시라.(&#039;일&#039;의 정의는 물론 넓다.) &lt;/P&gt;
&lt;P&gt;자식의 미래에 목을 맬 것 같은 여자는 질색이고, 자기 남자의 진짜 인생에 무관심할 것 같은 여자는 정말 싫다. 땀흘려 일하는 귀중함을 모르는 여자, 자기 얼굴과 분위기 그대로에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여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편과 자식 얘기밖에 못하는 여자는 괴롭고 자기 소신대로 사회평론 한 가닥 못 뽑는 여자는 재미없다.(이런 징후가 30대에 드러난다.) &lt;/P&gt;
&lt;P&gt;30대 남자보다 30대 여자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 방송인, 영화인 등. 사회에서 30대 여자를 일부러라도 주목해준다. 감사해야 할 변화인지 아니꼽게 봐야 할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월 좋아진 것으로 치자. 하물며 여자 35살이 되어야 비로소 매력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우리도 성숙해진 것 아닌가. &lt;/P&gt;
&lt;P&gt;무례를 무릅쓰고 30대 그 여자들을 꼽아보자. 전혜린처럼 30대의 긴장을 앞에 두고 자살한 여자도 있다. 31살. 나는 비겁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전혜린 말처럼 그토록 진정하게 치열한 30대를 살았더라면 전혜린은 아주 근사한 40대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40대 뿐이랴, 50대, 60대, 70대도 기대해봤었음 직하다.&lt;/P&gt;
&lt;P&gt;배우 이미연이 30대로 넘어가며 이혼을 했기에 독립 성장을 했다는 것은 아주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의 심정은 여하하든, 박수 짝짝짝! 니콜 키드먼이 남편의 화려한 그늘에서 빠져 나온 35살, 흥행성 높은 톰 크루즈는 기웃거려 보지도 못한 아카데미상까지 탔으니 통쾌하기 짝이 없다.영화에서 &#039;버지니어 울프&#039;로 분한 것을 보면 근사한 50대가 될 소지까지 보이니 박수 받아 마땅하다. &lt;/P&gt;
&lt;P&gt;성공한 앵커, 가장 닮고싶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당당한 여자 백지연이 30대에 투입한 자아 세우기 전투는 수많은 여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원하다. 30대가 넘으면 화려한 화면의 앵커 자리에서 내려오는 여전한 관행에 끔찍해하면서 때를 기다려주자. &lt;/P&gt;
&lt;P&gt;눈썰미 좋은 나에게 찍혔던 &amp;lt;박하사탕&amp;gt;의 문소리. &#039;20대 여자론 죽어도 주목을 못 받을 거야&#039; 하던 내 예감을 거의 맞추고 올해 29살에 베니스영화제에 두 번째 갔다. &#039;영원한 30대로 보이는 문소리&#039;가 되면 좋겠다. 공격적이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감돌고, 치열한... &lt;/P&gt;
&lt;P&gt;잊지 말자.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물론 그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여자 30대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lt;/P&gt;
&lt;P&gt;남자는 &#039;주어진 중심&#039;이 있기에 흔들리지만, 여자는 자신의 중심을 만들어가기에 비록 분열적인 상황에서 훨씬 더 괴롭지만 훨씬 더 창조적이다. 다중의 압력 속에서 여자 30대는 지나간다. 10년이 긴 것 같은가? 쏜살같다. 화살 같은 30대를 꾸려가는 당신의 비결은 &#039;늦기 전에&#039; 누드집을 만들건, 더 늦기 전에 &#039;성공 스토리&#039;를 쓰려하건, 또는 일찍 창업을 하려 하건, 30대 여자여, 당신의 &#039;외향 외&#039; 공격성은 위대하다&lt;/P&gt;
&lt;P&gt;건축가 김진애.&lt;/P&gt;&lt;/BLOCKQUOTE&gt;&lt;div id=&quot;jukeBox230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30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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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의 기억들</category>
			<category>30대 여자</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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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30#entry230comment</comments>
			<pubDate>Tue, 22 Jul 2008 01:57: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해야 한다는 성명서</title>
			<link>http://kbeom.com/tc/233</link>
			<description>&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2098054228.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19&quot; width=&quot;410&quot;  /&gt;&lt;/div&gt;&lt;/P&gt;
&lt;BLOCKQUOTE&gt;
&lt;P&gt;만일 불쾌한 기분이 되살아나고 얻은 것이라곤 없는 낡은 생각들을 되풀이 하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노력하라.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039;그만! 내 손을 잡아. 여기서 나가자.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039; [공지영 산문집]&lt;/P&gt;&lt;/BLOCKQUOTE&gt;
&lt;P&gt;날씨 선선하다. 다음주까지 이래야 하는데..&lt;/P&gt;&lt;div id=&quot;jukeBox233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33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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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의 기억들</category>
			<category>공지영</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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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33#entry233comment</comments>
			<pubDate>Mon, 21 Jul 2008 16:59:3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비가 온다</title>
			<link>http://kbeom.com/tc/228</link>
			<description>&lt;P&gt;낡은 컴퓨터를 정리하면서 그 속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다 코끝이 찡해집니다. 그 옛날에도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진해 해사에서 비가 오는 바다 풍경을 보면서 &#039;비가 온다&#039;란 플래시를 만들어 친구에게 준 기억이 있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늘 컴터를 끼고 플래시 연습하고 만들고 보내주고 그랬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립습니다.&lt;/P&gt;
&lt;P&gt;김범수의 &#039;보고싶다&#039; 연주곡에 아래 글을 입혀서 플래시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플래시는 도주하고 글과 그림만 남아 있습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살짝 포스팅합니다.&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397177653.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02&quot; width=&quot;410&quot;  /&gt;&lt;/div&gt;&lt;/P&gt;
&lt;p id=&quot;more228_0&quot; class=&quot;moreless_fold&quot;&gt;&lt;span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toggleMoreLess(this, &#039;228_0&#039;,&#039; more.. &#039;,&#039; less.. &#039;); return false;&quot;&gt; more.. &lt;/span&gt;&lt;/p&gt;&lt;div id=&quot;content228_0&quot; class=&quot;moreless_content&quot; style=&quot;display: none;&quot;&gt;&lt;STRONG&gt;&amp;nbsp;비가 온다.&lt;/STRONG&gt;
&lt;P&gt;창밖을 쳐다보다 문득 당신이 그리워졌어.&lt;BR&gt;네가 있는 그곳에서 너 또한 그러겠지. &lt;/P&gt;
&lt;P&gt;이런 날엔. &lt;BR&gt;이렇게 커피 한잔을 마주하고 네 표정을 읽고 싶어.&lt;BR&gt;수만 가지 표정을 담아낼 수 있는.&lt;BR&gt;네 얼굴이 자꾸 떠올라 참기 힘들다.&lt;/P&gt;
&lt;P&gt;보고 싶어.&lt;BR&gt;서로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어느 곳에 있던.&lt;BR&gt;그 간절함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올라.&lt;BR&gt;네가 있는 곳까지 전해진다 들었어.&lt;BR&gt;네가 나를 원하고.&lt;BR&gt;너를 원하는 나의 숨결이.&lt;BR&gt;세상 어느 곳에선가 만나고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지.&lt;/P&gt;
&lt;P&gt;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통해서.&lt;BR&gt;서로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다면.&lt;BR&gt;평생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lt;BR&gt;우리 서로 아파해야 할 부분은 견디기로 해.&lt;/P&gt;
&lt;P&gt;그리고 평생 후회 없이 그리워하고.&lt;BR&gt;후회없이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어.&lt;/P&gt;
&lt;P&gt;언젠가.&lt;BR&gt;우리의 호흡이 끝나는 순간에.&lt;BR&gt;아낌없이 사랑해준 당신이 소중하고.&lt;BR&gt;따뜻한 맘을 평생 품을 수 있었고.&lt;BR&gt;후회없이 사랑했던 그 맘 때문에.&lt;BR&gt;한없이 기쁜 맘으로.&lt;BR&gt;이 세상 떠날 수 있다면.&lt;BR&gt;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지. &lt;/P&gt;
&lt;P&gt;나보다 날 더 사랑해주는 당신.&lt;BR&gt;사랑해.&lt;/P&gt;
&lt;P&gt;2006년 4월 1일.&lt;/P&gt;&lt;/div&gt;&lt;div id=&quot;jukeBox228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28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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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의 기억들</category>
			<category>비</category>
			<category>비가온다</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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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28#entry228comment</comments>
			<pubDate>Sun, 20 Jul 2008 17:08:18 +0900</pubDate>
		</item>
		<item>
			<title>깜도 되지 않는 MB, 노무현에게 제대로 걸렸다</title>
			<link>http://kbeom.com/tc/227</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P&gt;&lt;objec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7,0,0,0&quot; width=&quot;420&quot; height=&quot;300&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 name=&quot;wmode&quot; value=&quot;transparent&quot;/&gt;&lt;param name=&quot;flashvars&quot; value=&quot;width=420&amp;amp;height=300&amp;amp;thumbsinplaylist=true&amp;amp;displayheight=280&amp;amp;overstretch=true&amp;amp;logo=&amp;amp;searchbar=false&amp;amp;linkfromdisplay=true&amp;amp;linktarget=_blank&amp;amp;file=/tc/plugins/GRZ_JWMediaPlayer/mkpl.php?list=1|%5bhttp%5d121.254.164.37%2fdaumblog%2f1001%2f53%2f9722353.flv|%5bhttp%5d121.254.164.37%2fdaumblog%2f1001%2f53%2f9722353.flv|%5bhttp%5dkbeom.com%2ftc%2fattach%2f1%2f1768042176.jpg||||%5bhttp%5dkbeom.com%2ftc|&quot;/&gt;&lt;!--[if !IE]&gt; &lt;--&gt;&lt;objec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transparent=&quot;yes&quot; data=&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 flashvars=&quot;thumbsinplaylist=true&amp;amp;displayheight=280&amp;amp;overstretch=true&amp;amp;logo=&amp;amp;searchbar=false&amp;amp;linkfromdisplay=true&amp;amp;linktarget=_blank&amp;amp;file=/tc/plugins/GRZ_JWMediaPlayer/mkpl.php?list=1|%5bhttp%5d121.254.164.37%2fdaumblog%2f1001%2f53%2f9722353.flv|%5bhttp%5d121.254.164.37%2fdaumblog%2f1001%2f53%2f9722353.flv|%5bhttp%5dkbeom.com%2ftc%2fattach%2f1%2f1768042176.jpg||||%5bhttp%5dkbeom.com%2ftc|&quot; width=&quot;420&quot; height=&quot;300&quot;&gt;&lt;p&gt;&lt;a href=&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gt;[Flash]&lt;/a&gt;&lt;/p&gt;&lt;/object&gt;&lt;!--&gt; &lt;![endif]--&gt;&lt;/object&gt;&amp;nbsp;오늘도 난 그가 그립다. &lt;/P&gt;&lt;/DIV&gt;
&lt;BLOCKQUOTE&gt;
&lt;P&gt;이명박 대통령님, &lt;BR&gt;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lt;BR&gt;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lt;/P&gt;
&lt;P&gt;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lt;/P&gt;
&lt;P&gt;- &lt;A href=&quot;http://www.knowhow.or.kr/app/bbs/view?meta_id=notice&amp;amp;list_op=YTo3OntpOjA7czo1OiJsc3RvcCI7aToxO3M6MTU6ImJic19saXN0X25vdGljZSI7aToyO3M6MDoiIjtpOjM7aTowO2k6NDtzOjI6IjE1IjtpOjU7czoyOiIxMCI7czoxMToiY2F0ZWdvcnlfaWQiO2I6MDt9&amp;amp;id=cb0bc092974d7ed799c48f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쥐박이에게 보내는 편지&lt;/FONT&gt;&lt;/A&gt; 중에서 &lt;/P&gt;&lt;/BLOCKQUOTE&gt;
&lt;P&gt;깜도 되지 않는 쥐박이가 무엇이 두려운지 전직 대통령에게 아주 생난리다. 지난 5년 내내 우려 먹던 &#039;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039;를 아직 통한다고 믿는 새뇌구조도 문제지만, 어수선한 현 시국 타개를 위한 비책이 고작 &#039;노무현&#039; 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들의 집단적 무뇌가 더 큰 문제다. &lt;/P&gt;
&lt;P&gt;인수위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기록을 줘도 안 받는다더니 이제 와서 달라고 떼쓰고, 법으로 인정한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을 지들이 뭔데 간섭하려 들고, 고소 고발 운운하며 비서관들의 손발을 묶으려 드는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을 놓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경험을 살려 살짝 언론 물타기를 하면서 정치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그의 행태를 보면 이제 짜증 나는 것을 넘어서 안쓰럽기만 하다. &lt;/P&gt;
&lt;P&gt;외국 정상들 만나면 히죽거리기며 사진이나 찍고 그들이 무슨 얘기하는지 아무런 고민 없이 지 꼴리는 데로 떠들기나 하는 실용 막장 외교는 이제 선을 넘어섰다. 달라고 하지도 않는 요구 조건을 기어들어가 넙죽 선물로 안긴 쇠고기 협상을 시작으로, &quot;과거는 묻지마. 미래가 중요해&quot; 라며 고국 쪽국 애들에게 독도 분쟁의 빌미나 제공하고, 러시아 정상을 &amp;nbsp;만난 자리에서는 &quot;물가 5% 밖에 오르지 않았다&quot;고 자랑 질이나, 동포 북한에게 전화도 못 해 쩔쩔매는 그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lt;/P&gt;
&lt;P&gt;경제대통령이라는 그의 뻥은 까발려 진지 오래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쓰다 서민 물가 아작나고, 서민 물가 잡는다고 저 환율 정책으로 돌아서다 주가 대 폭락하여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몇백 억 &amp;nbsp;안겨주고 하는 환율 방어 하나만 보더라도 그들의 경제 마인드는 7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취임 초 50여 개의 품목을 정해 물가를 잡는다고 설레발 친 것을 생각하면 내가 다 낯이 뜨겁다. 아씨바. &lt;/P&gt;
&lt;P&gt;사실 노무현 대통령님은 그동안 의도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삼갔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약간의 허니문기간을 주려고 했고, 곧 개설될 &#039;민주주의 2.0&#039; 토론 광장에서 중요한 의제들은 수렴 과정을 통해 시민의 목소리로 전달되기를 바란 것이 아닌가 한다. &lt;/P&gt;
&lt;P&gt;그런데 이번 쥐박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노여움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039;돌려준다&#039;의 의미가 더이상 논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겠지만, 편지 마지막 구절을 보면 &#039;똑바로 안 하면 꽉 해치뿐다&#039;는 의미로 들리는 건 나뿐인가. &lt;/P&gt;
&lt;P&gt;&lt;STRONG&gt;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lt;/STRONG&gt;&lt;/P&gt;</description>
			<category>질투는 나의힘</category>
			<category>2MB</category>
			<category>고양이가 무서워</category>
			<category>노무현</category>
			<category>맹박이</category>
			<category>무뇌</category>
			<category>무뇌충</category>
			<category>뻥박이</category>
			<category>새우깡 속의 니 머리</category>
			<category>이명박</category>
			<category>쥐</category>
			<category>쥐박이</category>
			<category>쥐새끼</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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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27#entry227comment</comments>
			<pubDate>Thu, 17 Jul 2008 16:31: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상등신</title>
			<link>http://kbeom.com/tc/226</link>
			<description>&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62457542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40&quot; width=&quot;410&quot;  /&gt;&lt;/div&gt;&lt;/P&gt;
&lt;DIV&gt;&lt;STRONG&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우주최고 상등신.&lt;/STRONG&gt;&lt;/DIV&gt;&lt;/STRONG&gt;&lt;/DIV&gt;&lt;BR&gt;
&lt;p id=&quot;more226_0&quot; class=&quot;moreless_fold&quot;&gt;&lt;span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toggleMoreLess(this, &#039;226_0&#039;,&#039;참고자료 : 외교에 등신인 MB&#039;,&#039;less..&#039;); return false;&quot;&gt;참고자료 : 외교에 등신인 MB&lt;/span&gt;&lt;/p&gt;&lt;div id=&quot;content226_0&quot; class=&quot;moreless_content&quot; style=&quot;display: none;&quot;&gt;7월은 사실 정치적 비수기다. 웬만하면 국민들은 바캉스다 뭐다 하면서 신문이나 방송의 이슈를 닫는게 상례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도 7월에는 휴가일정을 잡는다. 어쩌다 해외순방이 잡히면 그것이나 준비하고 좀 미리 8.15 광복절 메시지 준비를 하기도 한다. 
&lt;P class=바탕글&gt;그런데 2008년 7월은 다르다. 뭔가 쑥대밭이 된 느낌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슈들이 터진다. 그것도 죄다 메가톤 급이다. 이제는 뉴스를 보기 겁날 지경이라고 다들 이야기 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무슨일이 일어난거냐?..&lt;/P&gt;
&lt;P class=바탕글&gt;청와대 내부의 기능이 거의 정지상태라는 건 이제 쉬쉬하는 이야기 꺼리도 아니다. 기업의 경영자부터 시장통 아지매들까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명박을 대선에서 찍었던 안찍었던 상관없다. 모두가 이명박 청와대의 무능함에 진저리를 치는 것은 동일하니까 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어찌 보면 참으로 기가막힌 노릇이다. 어쩜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모조리 속을 수 있었을까?. 물론 목이 터져라 이명박은 아니다 라고 외친 사람들이 있었으나 대다수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저 그렇게 자칭 유능한 이명박을 찍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고 불과 몇 개월 만에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무능을 접하게 된다. 길을 가다 누구를 붙잡고 한번 물어보자. 지금 대한민국 총리가 누구인지?..아마 70%이상은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총리는 놀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사상 최강의 드림팀이라고 자칭하던 그 내각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왕이면 경제를 책임진다는 장관, 국방과 외교를 책임진다는 장관, 행정과 치안을 책임진다는 장관들의 이름도 함께 물어보자. 과연 아는가 모르는가?.&lt;/P&gt;
&lt;P class=바탕글&gt;대한민국은 지금 콘트롤 타워를 상실했다. 일하라고 뽑아논 머슴들이 집단으로 땡땡이를 치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다. 이와중에 소고기 문제가 터지고 독도 문제가 터지고 금강산 문제가 터지고 환율 문제, 주가폭락, 스테크플레이션 문제가 연달아 터졌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모든건 결과적으로 이명박 자신 스스로의 무능력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판단력이 극히 부족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대단히 전략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고 자평할지 모르나 지켜본바 그의 사고는 지극히 1차원적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의 판단은 과거 현대건설 시절부터 그랬다. 밑돌빼서 윗돌에 올려 놓는 식이었다. 일단 눈앞의 상황만 모면하고 다음일은 다음에 생각하자는 식의 사고는 저질 경영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쉽게 말해서 사기꾼식 경영이라는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런데 사기꾼이 되려 사기를 더잘 당한다는 말이 있다. 고도의 사기꾼은 사실 일반인을 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상식의 기반하에 판단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사기꾼의 낚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사기꾼은 다르다. 스스로가 사기꾼이기 때문에 되려 모든상황이 그럴싸해 보이는 착각에 빠진다. 이명박이 김경준의 사기행각이 그럴싸해 보여 BBK에 동참한것도 같은 이치다. 제대로된 경영자라면 김경준 같은 애송이의 거짓말에 농락당하지 않는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일본 교도통신과 요미우리의 독도 관련 보도만 봐도 그렇다. 이건 일종의 그물치기 전법이다. 국가 간 외교전쟁에서 일본은 이렇게 전방위로 이명박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 그물에 아주 보기좋게 걸려 들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명박이 제대로된 대통령이라면 일본총리 후쿠다가 G8 정상회담에서 일종의 “독도 떡밥”을 던질것이라는 것은 미리 예상했어야 한다. 그말이 진짜 “교과서에 싣겠다”던 아니면 다른 뉘앙스의 말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중요한건 타이밍이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사기칠 중요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눈뜬 장님이나 다름이 아니었다. 이명박 머릿속에는 일본 정상과 현장에서 나누는 몇마디 대화가 뭐그리 대수냐 생각했던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고 지금 그 안이한 생각에 대한 후폭풍을 맞이 하고 있다. 청와대는 변명하기 급급하다. 일본 교도통신이나 요미우리의 보도는 거짓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구차한 변명으로 국제사회에 비추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미 일본과의 외교전에서 진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얼굴들고 다니기 창피한 것이다. 무능력의 극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전혀 없었을까?..방법은 있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무식해서 그 방법을 알지 못했을 뿐,&lt;/P&gt;
&lt;P class=바탕글&gt;노무현 대통령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lt;/P&gt;
&lt;P class=바탕글&gt;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APEC 정상회담차 칠레 산티아고를 방문한다. 거기서 조지부시와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한미 정상회담은 대단 중요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문제가 정점으로 치닫을 때였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사실 그 자리는 한국입장에서 그리 유쾌한 자리가 아니다. 북핵문제의 한미공조를 동의하면 북한과 관계가 단절되고 그렇다고 남북관계만 주장하면 6자회담에서 미국의 비협조가 예상되는 그런 복잡한 상황이였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게다가 한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강경 네오콘들이 꺼내들 해법은 당연히 6자회담 무용론과 대북압박 이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네오콘의 해법에 동조했다는 말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칠레로 향하기 전 미국 LA를 방문해 사전 연설을 한다. 연설의 주된 내용은 두가지다. 하나는 한미동맹을 수평적 동등 관계로 격상하겠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북핵을 무력으로 제압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건 고도의 외교술이다. 한미정상회담 전에 미리 의제의 알리바이를 처놓는것이다. 이렇게 사전에 이야기함으로서 정상 회담이후 한국이 미국 네오콘의 해법에 무조건 동의했다 라는 구설을 피해가는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명박이 제대로된 능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후쿠다를 만나기 전에 바로 이런 정지작업을 했어야 한다. 한일관계가 새로운 미래로 가지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에 있다는 점을 밝혔어야 하는거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런 작업을 하지 못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왜?.&lt;/P&gt;
&lt;P class=바탕글&gt;거듭 말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절대 유능하지 않다. 역사상 최악의 무능집단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이들은 뭔가를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이 이야기 하는 실용이란 다른말로 이야기 하면 사기일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이상 사기치지 말라”라고 외치는 순간 이 무능한 세력의 거대한 사기극은 막을 내릴 것이다. 과연 그때가 언제일까?..얼마남지 않은듯하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출처 : &lt;A href=&quot;http://grands.egloos.co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99ff&gt;마케터님 글&lt;/FONT&gt;&lt;/A&gt;&lt;/P&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질투는 나의힘</category>
			<category>이명박</category>
			<category>한일관계</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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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Jul 2008 15:28:4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잊어야 할 것은</title>
			<link>http://kbeom.com/tc/225</link>
			<description>&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1056906775.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62&quot; width=&quot;410&quot;  /&gt;&lt;/div&gt; &lt;/P&gt;
&lt;BLOCKQUOTE&gt;
&lt;P&gt;산다는 게 그랬다. &lt;BR&gt;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lt;BR&gt;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히려 잊었다.&lt;/P&gt;
&lt;P&gt;- &#039;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039; 중에서&lt;/P&gt;&lt;/BLOCKQUOTE&gt;
&lt;P&gt;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풍요보다는 궁핍이 삶의 대립물이 되어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하고, 우리에게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에 도달하게 하며 환상을 제거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고 믿습니다.&lt;/P&gt;
&lt;P&gt;&lt;div id=&quot;jukeBox225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25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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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의 기억들</category>
			<category>사랑</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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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Jul 2008 15:03: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그저 따뜻한 가슴 하나로</title>
			<link>http://kbeom.com/tc/223</link>
			<description>&lt;P&gt;무더위가 시작입니다. 올해는 어찌된 것인지 불더위와 물소나기의 팽팽히 싸움이 예전만 못합니다. 며칠 반짝 소나기를 뿌려주더니 어느새 더위가 기승입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육체와 정신을 좀먹는 벌레인 것을 또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더위가 짱을 먹은 날이면 시워한 에어컨 바람아래 책이나 읽던가 영화한편 보는게 딱일텐데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에고고...&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kbeom.com/tc/attach/1/2001486244.gif&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155&quot; width=&quot;313&quot;  /&gt;&lt;/div&gt;&lt;/P&gt;
&lt;BLOCKQUOTE&gt;
&lt;P&gt;연습을 통해서, 그 어느 완성된 사람으로 되기는 싫습니다.&amp;nbsp; &lt;BR&gt;상황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 상황에서는 저렇게 행동해야 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규칙을 통달한 달인이 되기 보다는 그저 따뜻한 가슴 하나로 부딪치고 멍들고 비웃음을 받을지라도 그저 못난 그대로 풀 한 포기, 햇살 한 조각의 아름다움에 가슴 아련해지는 그대로의 나이고 싶습니다.&lt;/P&gt;
&lt;P&gt;정채봉.&lt;/P&gt;&lt;/BLOCKQUOTE&gt;&lt;BR&gt;&lt;STRONG&gt;&lt;div id=&quot;jukeBox2232Div&quot; style=&quot;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 id=&quot;jukeBoxContainer2232&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lt;![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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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의 기억들</category>
			<category>일상</category>
			<category>정채봉</category>
			<author>(디제라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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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beom.com/tc/223#entry223comment</comments>
			<pubDate>Wed, 09 Jul 2008 22:43: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유시민의 예언</title>
			<link>http://kbeom.com/tc/224</link>
			<description>&lt;object classid=&quot;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quot; codebase=&quot;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7,0,0,0&quot; width=&quot;420&quot; height=&quot;335&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 name=&quot;wmode&quot; value=&quot;transparent&quot;/&gt;&lt;param name=&quot;flashvars&quot; value=&quot;width=420&amp;amp;height=335&amp;amp;thumbsinplaylist=true&amp;amp;autostart=true&amp;amp;displayheight=315&amp;amp;overstretch=false&amp;amp;logo=&amp;amp;searchbar=false&amp;amp;linkfromdisplay=true&amp;amp;linktarget=_blank&amp;amp;file=/tc/plugins/GRZ_JWMediaPlayer/mkpl.php?list=1|%5bhttp%5dwww.%5b%5byoutube%5d%5d%2fwatch%3fv%3dXIPd0QH9S0M|%5bhttp%5dwww.%5b%5byoutube%5d%5d%2fwatch%3fv%3dXIPd0QH9S0M|||||%5bhttp%5dkbeom.com%2ftc|&quot;/&gt;&lt;!--[if !IE]&gt; &lt;--&gt;&lt;objec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transparent=&quot;yes&quot; data=&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 flashvars=&quot;thumbsinplaylist=true&amp;amp;autostart=true&amp;amp;displayheight=315&amp;amp;overstretch=false&amp;amp;logo=&amp;amp;searchbar=false&amp;amp;linkfromdisplay=true&amp;amp;linktarget=_blank&amp;amp;file=/tc/plugins/GRZ_JWMediaPlayer/mkpl.php?list=1|%5bhttp%5dwww.%5b%5byoutube%5d%5d%2fwatch%3fv%3dXIPd0QH9S0M|%5bhttp%5dwww.%5b%5byoutube%5d%5d%2fwatch%3fv%3dXIPd0QH9S0M|||||%5bhttp%5dkbeom.com%2ftc|&quot; width=&quot;420&quot; height=&quot;335&quot;&gt;&lt;p&gt;&lt;a href=&quot;/tc/plugins/GRZ_JWMediaPlayer/mediaplayer.swf&quot;&gt;[Flash]&lt;/a&gt;&lt;/p&gt;&lt;/object&gt;&lt;!--&gt; &lt;![endif]--&gt;&lt;/object&gt;&lt;br&gt;&lt;blockquote&gt;유시민님의 작년 경선 당시 특강 동영상 일부입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붕괴와 히틀러 집권을 2007년 한나라당 집권과 비교하여 설명해 주셨는데.. 우려했던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lt;br&gt;&lt;/blockquote&gt;&lt;br&gt;&lt;p id=&quot;more224_0&quot; class=&quot;moreless_fold&quot;&gt;&lt;span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toggleMoreLess(this, &#039;224_0&#039;,&#039;참고자료 : 바이마르공화국의 정당구조와 그 헌법적 의의&#039;,&#039;less..&#039;); return false;&quot;&gt;참고자료 : 바이마르공화국의 정당구조와 그 헌법적 의의&lt;/span&gt;&lt;/p&gt;&lt;div id=&quot;content224_0&quot; class=&quot;moreless_content&quot; style=&quot;display: none;&quot;&gt; &lt;span style=&quot;cursor: pointer; font-weight: bold;&quot; onclick=&quot;toggleMoreLess(this, &#039;224_0&#039;,&#039;참고자료 : 바이마르공화국의 정당구조와 그 헌법적 의의&#039;,&#039;less..&#039;); return false;&quot;&gt;바이마르공화국의 정당구조와 그 헌법적 의의&lt;/span&gt;&lt;br&gt;&lt;br&gt;송석윤 (대전대학교 법학과) &lt;br&gt;&lt;br&gt;&lt;b&gt;I. 머리말&lt;/b&gt; &lt;br&gt;&lt;br&gt;1. 연구의 대상과 목적 &lt;br&gt;&lt;br&gt;이 글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의 정당구조를 살피고 이와 관련된 헌법적인 문제들을 봄으로써 상대적으로 짧은 헌정사를 지닌 우리나라 민주헌정의 발전에 귀감으로 
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lt;br&gt;&lt;br&gt;독일의 근현대헌정사의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서유럽이나 북미에서와는 달리 경제적 성장이 정치적 
민주화로 연결되지 않고 오랜동안의 지체를 경험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산업혁명 이후의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군주정으로부터 의회민주주의에로의 
전환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입헌군주제라는 관헌국가적 지배질서가 20세기초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성립은 이러한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의 비동시성이 처음으로 극복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독일의 헌정사적 경험이 흔히 &quot;개발독재&quot;라고 불리우는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경제성장이 이루어 지고 이제 정치적인 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헌법정치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당구조와 관련한 바이마르헌정사는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원주의화경향과 그에 따른 이익갈등의 문제에 직면해서 민주적 
정당국가의 헌법학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부과하고 있다. &lt;br&gt;&lt;br&gt;&lt;br&gt;2. 연구의 방법 &lt;br&gt;&lt;br&gt;&lt;br&gt;독일 바이마르헌법은 흔히 
본(Bonn)기본법의 쓰여지지 않은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민주적이라고 일컬어 졌던 바이마르헌법에 
기반하였던 민주주의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던 경험이 제2차대전 이후의 독일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녔던 것을 
보여준다. 바이마르공화국은 오랜 입헌군주제적 헌법질서를 극복하고 독일헌정사에서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건설하였다. 이는 동시에 그 동안 성장하여 
온 정당들이 직접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통치의 주체가 되었던 정당국가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바이마르공화국의 실패는 정당국가의 실패였다. 
&lt;br&gt;&lt;br&gt;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의 역사학자와 헌정사가들은 바이마르 정당국가의 실패원인을 규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을 
새로운 민주주의의 건설에 참고하려 하였다. 하지만 1950년대와 60년대의 연구결과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이후의 보다 실증적인 연구를 통하여 
역사현실에 맞지 않는 &quot;신화&quot;로 판명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바이마르공화국이 실패한 것은 잘못된 헌법때문이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헌법의 문제를 살핌에 있어 현실적인 배경을 도외시하는 방법론적인 접근방식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바이마르의 역사가 바로 나찌의 
집권과 연결되었고 따라서 50년대와 60년대 연구자들의 상당수가 동시대인으로서 역사연구에 필요한 적정거리를 유지하지 못하였던 데에 보다 깊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인적 과거청산과 과거와의 단절이 이루어 졌지만 시간이 흐르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lt;br&gt;&lt;br&gt;독일 바이마르민주주의의 실패원인을 헌법이 규율대상으로 삼았던 사회나 그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보다는 헌법 자체에서 찾아내던 분위기 속에서 주로 제기되었던 문제들이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의한 정당난립, 헌법상의 
직접민주제적 요소의 도입, 제국대통령의 비상대권 등이었다. 독일 헌정사과 그에 기반한 독일 헌법이론이 우리나라의 헌법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바이마르민주주의 붕괴의 원인을 몇개의 헌법상의 제도에서 찾는 단순논리는 보다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상대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lt;br&gt;&lt;br&gt;바이마르헌정사에서의 정당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구체적인 정당현실을 분석하는 
역사학적인 접근이 기본이 될 터인데, 특히 정당구조를 사회구조와 연결하여 이해하려면 그중에서도 사회사적인 접근이 유용할 것이다. 또한 고도로 
발달한 다원주의적 정당국가에서의 민주주의의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려면 바이마르공화국에서의 정치문화를 규명하는 정치학에서의 작업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바이마르 헌법학설을 고찰하게 될 것인데, 이는 결국 헌정사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규명하는 데에는 학제간의 연구가 
불가피하다는 방법론적 필요성에 근거하는 것이다. &lt;br&gt;&lt;br&gt;&lt;br&gt;3. 연구의 개요 &lt;br&gt;&lt;br&gt;&lt;br&gt;이러한 문제의식하에서 이 연구는 
바이마르공화국 정당의 체제와 특성 및 그것이 지닌 문제점을 살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바이마르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나찌가 집권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후에는 바이마르정당국가에 대한 헌법학에서의 논의를 다원주의론과 동질성개념을 중심으로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바이마르의 정당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gt;II. 바이마르공화국의 
정당구조&lt;/b&gt; &lt;br&gt;&lt;br&gt;&lt;br&gt;1. 11월혁명과 정당국가적 의회민주주의의 탄생 &lt;br&gt;&lt;br&gt;&lt;br&gt;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이 
확실해지면서 의회에 진출해 있던 독일의 정당들은 기존의 입헌군주제(konstitutionelle Monarchie)헌법을 
의회군주제(parlamentarische Monarchie)헌법으로 개정함으로써 전후의 상황에 대처하려 하였다. 이러한 정당들의 시도는 
1918년 11월혁명의 물결 속에서 민중의 요구에 의해 공화국이 선포됨으로써 무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혁기에서 정당은 일단 정치적 사건들의 
전면에서 물러나 있게 된다. 하지만 혁명의 결과가 의회민주주의의 선택으로 귀결되자 정당은 정치무대의 전면으로 대두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의회민주주의에서 정당은 더이상 단순히 정부에 대해 사회를 대표하는 입장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이제 정당은 자신의 
당원을 국가의 영역으로 파견하여 국가기관을 조직하고 창조력과 책임감으로 정치를 주도해야 했다. 의회민주주의의 성패는 정당의 기능여하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의회민주주의로의 결정은 동시에 - 당시의 사람들이 충분히 인식하였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 정당국가로의 
결정이었다. &lt;br&gt;&lt;br&gt;바이마르정당체제의 기본구조는 그 이전의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상당한 연속성을 보이므로 먼저 19세기에 독일의 
정당체제가 형성되는 모습을 살피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lt;br&gt;&lt;br&gt;&lt;br&gt;2. 독일입헌주의하에서의 정당체제의 형성 
&lt;br&gt;&lt;br&gt;&lt;br&gt;독일에서 정당이 상대적으로 되늦게 형성된 것은 의회제도의 정착이 상대적으로 지체된 결과였다. 정당이 정치운동 속에서 
느슨하게 조직된 그룹으로서의 초기형태를 극복하고 비약하게 된 것은 1848/49년의 혁명을 겪으면서였다. 이 때에 원내교섭단체로서의 정당의 
원내조직과 이른바 &quot;정치적 결사&quot;(politische Vereine)로서의 정당의 원외조직이 공고해 진다. 이미 1848년 삼월혁명 이전 시기에 
형성되어 있었던 다섯가지 정치적 경향의 구별이 더욱 뚜렷해진 것도 이 때였다. 이제 민주적 시민계급, 자유주의적 시민계급, 정치적인 카톨릭주의, 
보수주의 그리고 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었던 것이다. 정당의 조직적 발전은 혁명이후의 반동기에 일시 정지되거나 후퇴하지만, 독일제국성립 
이전의 약 10년동안 새로이 결정적인 부흥기를 맞이한다. 자유주의세력은 이 시기에 특히 프로이센의 군대 및 헌법갈등(Preußische 
Heeres- und Verfassungskonflikt)을 계기로 정치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관료주의적인 
관헌국가의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허약함을 드러내었고, 당대인 핵심문제였던 민족통일의 과제를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였다. 기본적으로 비스마르크의 
성공적인 외교정책을 통해 추진되었던 독일의 민족통일과정은 정치적 자유주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패배를 겪으면서 
자유주의세력이 1866/67년에 좌파자유주의자와 민족자유주의자로 분열되었다. 이는 독일자유주의의 분열이 취종적으로 고착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정치발전과정에 있어서 자유주의세력의 주도력결여로 인해서 독일정치가 전반적으로 국민전체를 상정하는 정치로부터 계급정치로 이행하는 것이 촉진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와 정치적 카톨릭주의가 정치적 자유주의로부터 이탈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 &lt;br&gt;&lt;br&gt;사회민주주의자들이 시민적 
민주주의로부터 이탈하는 단초는 이미 1848/49년 혁명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노동운동이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인 목표와 
관련하여 자유주의에 비해서 강력한 국가지향성을 띄었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자각하면서 사회적 요구를 강화시키는 것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이 상반된 감정이 병존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계속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리과정이 종지부를 찍은 것은 70년대 초반에 
자유주의자의 다수가 이미 비스마르크의 &quot;현실정치&quot;에 동화된 것이 명백해진 시점이었다. 통일과정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이른바 민족문제의 
소독일주의적인 해결로 인해서 카톨릭교도들은 프로테스탄트적-북독일적 특징을 지닌 독일제국에서 종교적인 소수세력이 되었다. 1870년대 초에 정치적 
카톨릭주의는 새로운 대중정당인 중앙당을 세운다. 이 정당이 성립되어 결속하게 되는 데에는 비스마르크가 주도하고 자유주의자들이 지원했던 
문화투쟁에서의 카톨릭에 대한 억압적인 분위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lt;br&gt;&lt;br&gt;정치적 카톨릭주의정당과 노동자계급의 정당이 형성되고 뿌리를 
내리는 1870년대 중반에 이르면 다섯개의 흐름으로 대별되는 독일의 정당체제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정당체제의 근간은 카이저제국 
기간동안에 합병, 분열, 당명변경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채 남아 있었고 바이마르공화국으로 이행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는데, 이는 좌파자유주의, 
민족자유주의, 카톨릭중앙당, 자유보수주의와 독일보수주의로 분열된 보수주의자 및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으로 구성되었다. &lt;br&gt;&lt;br&gt;&lt;br&gt;3. 
바이마르공화국 정당체제의 연속성 &lt;br&gt;&lt;br&gt;&lt;br&gt;(1) 5개 유형의 정당체제 &lt;br&gt;&lt;br&gt;입헌군주제에서 의회민주주의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독일정당들의 기본구조는 주목할 만큼의 연속성을 보였다. 정치적 변혁으로 인해서 일련의 새로운 창당작업이 있었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그 이전의 
정치흐름들이 본질적인 변화없이 그대로 존속하였다. 카이저제국에서는 독일보수당(die deutschkonservative Partei)과 
독일제국당(die deutsche Reichspartei)으로 양분되었던 보수주의세력은 1918년 11월 24일에 독일민족국민당(die 
Deutschnationale Volkspartei)을 창당하였다. 군주제로의 복귀를 정강정책으로 하던 독일민족국민당에는 
기독교사회적(christlichsozial) 세력, 독일국수주의적(deutschvolkisch) 세력, 
반유대주의적(antisemitistisch) 세력 등 다양한 집단들이 참여했다. 한편 단일한 자유주의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협상이 실패한 후인 
1918년 12월 5일에는 자유주의우파 중에서 슈트레제만(Stresemann)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독일국민당(die Deutsche 
Volkspartei)을 세웠다. 독일국민당의 정강정책은 공화국이라는 국가형태에 대해서 유보적이었다. 자유주의좌파세력은 기존의 자유주의우파세력의 
일부와 함께 1918년 11월 20일에 독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정치적 카톨릭주의세력에게는 새로운 창당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존의 
카톨릭중앙당이, 잠시 기독교국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존속하였다. 하지만 카톨릭중앙당은 같은 카톨릭세력에 기반을 
두면서도 연방주의적 성향을 강조하는 바이에른국민당(die Bayerische Volkspartei)이 1918년에 창당되고 1920년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일사회민주당(die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으로 집중되어 있던 노동운동세력에게도 정치적 카톨릭주의와 마찬가지로 강한 영속성이 나타났다.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에서의 
사민당은 노동운동세력의 유일한 정치적 대표를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분리되었던 독립사민당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다. 
1920년에 독립사민당의 좌파가 그 사이에 창건된 독일공산당에 참여하고 독립사민당의 우파가 사민당으로 재합류한 이후부터 바이마르공화국이 
붕괴되기까지 사민당과 공산당이라는 두개의 노동자정당이 양립하는 구조가 지속되었다. &lt;br&gt;&lt;br&gt;&lt;br&gt;(2) 군소정당 &lt;br&gt;&lt;br&gt;이러한 
다섯가지의 주된 흐름을 제외하고도 다수의 군소정당(여기서는 선거득표율이 4%미만인 정당을 의미함)이 있었던 형편은 카이저제국 때와 다르지 
않았다. 1912년의 라이히하원 선거결과 전체 397석 중에서 28석을 점하고 있던 소수민족정당들은 베르사이유조약에 따라서 영토가 줄어든 관계로 
한두석 정도의 의석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찌주의자들 역시 1930년이후의 도약이전까지는 군소정당에 속하였다. 일시적으로 적지 않은 세력을 보여 
주었던 정당으로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경제당(die Wirtschaftspartei)을 들 수 있다. 경제당은 1928년과 1930년의 선거에서 
각각 4.5%와 3.9%의 득표율로 23석을 획득했었다. 군소정당의 득표율은 전체적으로 보아 우선은 카이저제국에서(1912년 13.6%) 보다 
감소하였다가(1919년 1.3%) 1920년부터 다시 증가하여(5.1%) 1930년에는 20.8%로 최고치에 이르렀다. 1932년의 선거에서 
기존의 군소정당들에게 행해지던 투표의 상당부분이 나찌당으로 흡수되면서 이 비율은 다시 8%로 내려갔다. 이러한 군소정당의 전개양상으로부터 
유권자의 정당선호의 변화를 분석하는 중요한 지표들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 하에서 군소정당의 역할은 몇 개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그리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입헌군주제하에서 형성되었던 정당체계가 물론 위기상황의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28년경까지는 본질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었다. &lt;br&gt;&lt;br&gt;&lt;br&gt;(3) 당내 권력구조의 불변 &lt;br&gt;&lt;br&gt;혁명이 발발한 
후 몇달동안은 각 정당들 내부에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중도 내지 우파정당에서 뚜렸했다. 지금까지 
기존정당 내에서 좌파적인 경향을 지니던 정치인과 당내파벌들이 정당지도부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카톨릭중앙당에서는 
에르츠베르거(Erzberger)가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고 또한 카톨릭노동운동출신의 정치인들의 당내입지가 강화되었다. 독일민주당의 
지도부에서는 창당을 주도하였고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밀접한 협력관계를 지향하던 그룹이 자유주의좌파정당의 전신이던 진보국민당(die 
Fortschrittliche Volkspartei)의 지도부에서 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보수주의정당인 독일민족국민당에서조차도 
독일보수주의의 반동적인 노선을 지향하던 정치인들은 우선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 정당 내에서의 권력중심의 이동이 지속적이지는 
못하였다. 당내 우파에 속하던 구세력들은 1920년경에 이르면 잃었던 당내지위를 상당부분 회복하게 된다. &lt;br&gt;&lt;br&gt;우파세력이 혁명에도 
불구하고 연속성을 유지했던 정치상황의 전개에 대해서 사회주의세력은 실망하게 되었다. 이것이 날로 급진화하던 독립사민당과 공산당이 사민당의 
지지기반을 잠식하며 노동자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원인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좌파로부터의 압력은 다시 사민당우파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이마르정당구조가 양극화하는 전제조건은 이미 초기부터 주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lt;br&gt;&lt;br&gt;&lt;br&gt;4. 정당의 사회적 
기반 &lt;br&gt;&lt;br&gt;&lt;br&gt;(1) 이익정당화 대중정당화현상과 그 문제점 &lt;br&gt;&lt;br&gt;바이마르공화국에서의 정당들에 있어 근본적으로 새로운 조건은 
정치적인 경쟁이 훨씬 민주적으로 되었다는 점이었다. 지방선거에서는 여전히 남아있던 상류계층의 선거법상의 특권은 사라졌으며, 이전의 친정부적인 
세력들은 더이상 선거에서 국가행정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대중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중도 내지 우파정당들은 
독자적인 대중조직을 구축하는 노력을 배가하여 &quot;통합정당&quot;(Integrationspartei)으로 변신하려 하였다. 정당들이 당명을 정함에 있어 
스스로를 즐겨 무슨 &quot;국민당&quot;(Volkspartei)이라고 부르는 유행으로부터 이러한 분위기의 징표를 볼 수 있다. &lt;br&gt;&lt;br&gt;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이미 카이저제국에서 시작되었던 정당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대중조직이 상호연대하는 현상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였다. 독일의 
정당체제는 그 형성시부터 주로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구성되었는데 이러한 정당구조는 1870년대말의 경제정책과 국내정치의 전환과 함께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1873년에 시작된 경제위기는 농업의 구조적인 위기에 의해서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경제위기에 직면해서 특히 보호관세정책을 
중심으로 한 갈등과 관련하여 경제정책에 대한 이해대립이 첨예화되고 이는 정치적 대결로 전화되었다. 이는 정당활동의 중점이 헌법정치적인 문제로부터 
멀어져서 경제사회적인 이익대표로 축소됨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의회의 정치적 잠재력을 약화시키고 민족자유주의자를 분열시키려 하였던 
비스마르크의 정책에 의해 의식적으로 조장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당의 변화는 또한 강력한 이익단체의 등장에 의해서 촉진되었다. 이들 이익단체는 
보호관세와 관련된 투쟁의 과정에서 성립하여 곧이어 정치영역에서 정당과 경쟁하게 된다. &lt;br&gt;&lt;br&gt;이처럼 정당들이 정당정책적으로 사회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지향하게 되는 것 이외에도 1890년대 초반에 이르면 정당의 조직분야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지금까지 비사회주의 
부르조아정당들은 선거운동에서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명사집단에 의지했었고 어떠한 원외의 대중조직도 지니지 않았었다. 하지만 1889/90년 파업의 
물결 이후 사회민주당이 노동조합과의 연계 속에 대중조직을 확보하게 되자 이들 정당들도 항시적으로 활동할 대중정당으로의 조직적인 변신을 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보다 깊은 이유는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국민의 범위가 넓어진 데 있었다. 농업분야에서의 위기는 
특히 심각해서 새롭게 결성된 농민단체의 주도하에 특히 강력한 대중운동이 일어난다. 이러한 신흥 이익단체들은 자신들의 대중조직을 정당기구가 없던 
기존의 명사정당에 제공하면서 정당에 대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lt;br&gt;&lt;br&gt;정당의 이러한 이익정당으로의 정강정책상의 변화와 
대중정당으로의 조직상의 변화는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유권자의 이해관계다변화와 정치화의 부득이한 결과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여 통치의 책임을 지는 길이 막힌 상황에서 기존의 정당체제가 유지되는 속에서 진행되었고, 이는 정당들이 상대적으로 폐쇄된 각자의 
사회적 지지기반에 고착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었다. 정당정치의 기초가 세계관에서 이해관계 바뀌고 그와 함께 개별정당의 정치적 의미도 변화했지만 
독일의 정당체제 전반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었다. 이처럼 정당의 발전이 정체된 상황은 장기적으로 보아 정치의 진전된 의회주의화라는 
헌법정치적인 관점에서 정당들을 포괄하는 연대의 형성이나 보다 넓은 사회적 지지기반을 지닌 국민정당으로의 발전을 저해했다. 
&lt;br&gt;&lt;br&gt;&lt;br&gt;(2) 사회적 지지기반의 고착화와 그 붕괴의 징후 &lt;br&gt;&lt;br&gt;앞에서 살핀 대중정당화의 경향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도 
지속되었다. 이러한 전개상황 속에서 이미 카이저제국 시대에 결속력이 강한 사회배경에 기초하는 대중적 기반을 지녔던 정당들은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카톨릭중앙당은 계속해서 카톨릭세력에 기반을 둘 수 있어서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사민당 역시, 사회주의노동운동의 분열로 
지지기반의 일부를 공산당에게 내주었지만, 여전히 노동자세력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다. 보수주의정당인 독일민족국민당은 전쟁이전의 보수주의정당과는 
달리 더이상 엘베강동쪽의 대토지소유자와 농민단체인 농민연맹(Bund der Landwirte)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 독일민족국민당은 
개신교회와 농민단체와의 기존의 연대를 넘어서 &quot;전독일연맹&quot;(Alldeutscher Verband)이나 &quot;철모, 전선병사동맹&quot;(Stahlhelm, 
Bund der Frontsoldaten) 등과 같은 국수 민족주의적인(volkisch-nationalistisch) 집단들과의 밀접한 연계를 
추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양태로 존재하던 극우민족주의세력들은 전쟁과 전후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바이마르공화국에서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독일민족국민당은 적어도 나찌당이 약진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극우민족주의적인 세력을 확고한 기반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언급한 정당들과는 달리 자유주의정당들은 원외의 대중조직들과의 밀접한 연계를 확보하는 데에 실패하였다. 자유주의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워낙 다양하고 이질적이었던 때문에 하나의 결속력있는 집단이 나올 수가 없었다. 자유주의정당들은 바이마르공화국 초기까지는 어느정도 
과거의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1924년부터는 유권자를 모으는 통합력을 급격하게 상실하게 된다. &lt;br&gt;&lt;br&gt;바이마르정당들이 지녔던 
이러한 기존의 - 또는 부분적으로 공화국초기에 새로이 보완한 - 사회적 기반에는 이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카톨릭중앙당의 경우에는 
헌법제정국민회의의 선거에서는 새로운 문화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지지기반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기존의 지지율을 상회하는 선거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1920년부터는 이미 카이저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하강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사회주의정당들의 득표율도 1920년에는 
1912년선거의 수준으로 떨어져서 그 이후에는 구조적인 득표율상승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보수주의정당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경제위기하에서 치러진 1924년의 선거에서 자유주의정당의 지지기반이던 도시유권자들의 항의성 투표를 획득하였던 것을 예외로 한다면 보수주의정당도 
전쟁이전의 득표율을 대체로 유지하는 데에 그쳤다. 이를 종합적으로 보자면 이미 전쟁 전부터 존재했던 각 정당들과 특정 사회집단들과의 밀접한 
연관성이 바이마르공화국이 생성되던 이행기에서의 일시적인 변화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이마르정당들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의 
외연을 확장하려 노력하는 것보다는 사회 경제적인 제이해관계들과의 기존의 관계를 공고히하는 데에 주력했던 것이었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gt;III. 정당들의 세계관정당적 성격과 연정형성의 문제점&lt;/b&gt; &lt;br&gt;&lt;br&gt;&lt;br&gt;1. 독일정당의 
세계관정당적 성격 &lt;br&gt;&lt;br&gt;&lt;br&gt;바이마르공화국에서도 정당구조가 대중조직을 지닌 이익정당으로 변하는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이로써 독일정당이 
그 탄생부터 지니고 있었던 세계관정당으로서의 특성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수이익들은 입헌군주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이념들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당들은 사회의 이해대립을 주도적으로 중재하여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지니지 못하였다. 정당은 오히려 이해관계가 정치화하는 과정에서의 형식적인 중간정거장이거나 아니면 오히려 이해대립의 세계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이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일반국민들이 정치에 대해서 만병통치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이 독자적인 주도권으로 이러한 
기대를 합리적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한에는 국민들은 정책결정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의회민주주의하에서의 정책결정은 다양한 이해와 
입장들간의 타협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정당들이 지니고 있었던 세계관정당적인 특성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부분적으로는 강화되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책임을 지고 따라서 타협을 해야하는 정당의 활동공간을 제약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극우 및 
극좌의 입장에서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던 정당들에게는 항의투표를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lt;br&gt;&lt;br&gt;바이마르공화국의 정당들에서 
발견되는 세계관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성격은 사실 오랜 뿌리를 지닌 것이었다. 19세기에 독일에서 정당이 형성되었을 때에는 이미 관료와 군대라는 
고도로 발달된 국가의 &quot;기간조직&quot;이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은 후였다. 이에 반하여 정당들은 초기에는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지니지 
못하였고 거의 전적으로 소수의 교양시민계층에 의지해야만 했다. 정당의 방향을 결정했던 정치철학의 흐름들도 국가기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독일정당들은 그 생성기에 있어 정치에 대해 책임있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당들은 
세계관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띄게 되었다. 라이히헌법에 의하면 정당의 주된 활동영역인 의회는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권한은 갖지만 
정부구성으로부터는 배제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당은 정치권력획득을 위한 투쟁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사회 경제적 대립의 조정작업이나 
정부정책에 대한 찬반의 입장표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당은 카이저제국 기간 동안에 정치과정에서 점차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동시에 
독일정당은 기존정치질서에 대해 묵시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적응하고 또한 경제적 이해관계와 연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헌법구조적으로 정당이 통치의 책임을 지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던 한에는 독일정당이 지녔던 원리주의적인 성격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고 
단지 새로운 요소와 중첩될 뿐이었다. 정당의 분열, 정당 간의 안정된 협력관계의 공고화의 어려움, 첨예한 당내노선투쟁 등 카이저제국의 정당들이 
지녔던 문제의 원인은 직 간접적으로 독일정당에 내재하고 있던 세계관적 원리주의적 특성에 있을 것이다. 정부의 구성을 의회가 주도하는 
의회민주주의로의 전개가 정체된 상황에서에서 정당이 젊은 정치지망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활동공간이 넓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정체상황이 명백해진 
카이저제국 후반기에 정당들은 인력충원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문제점은 후에 바이마르공화국시대에 정당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나타나게 된다. 
&lt;br&gt;&lt;br&gt;입헌군주제하에서는 정당들이 반드시 의회에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다수를 형성할 필요가 없었다. 정당들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대해서 
야당의 역할을 하였고 이에 익숙해 있었다. 입헌군주제하에서 형성된 이러한 역할인식이 공화국으로의 이전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었다. 정부를 구성하는 
데에 참여한 정당들은 야당들의 공격에 대해서 정부의 지원세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정부를 비판하는 의회야당역할을 하였다.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들의 내각에 대한 입장이 당내의 권력구조가 수시로 변하는 것에 따라서 바뀐다면 예측가능한 일관된 정책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바이마르공화국의 기간 동안에 출신정당의 결속된 지원을 받으며 정부에 참여할 수 있었던 정치인은 전혀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구스타프 슈트레제만(Gustav Stresemann) 정도였는데, 자유주의우파정당인 독일국민당 내에서의 그의 지도적 입장도 항상 
안정된 것만은 아니었다. 정당들의 이러한 역할인식은 정당들에게 여전히 남아있던 세계관정당적인 특성과 함께 바이마르공화국에서의 연립정부들이 
허약하고 불안정했던 원인을 제공하였다. &lt;br&gt;&lt;br&gt;&lt;br&gt;2. 연정구성의 어려움 &lt;br&gt;&lt;br&gt;&lt;br&gt;정부를 구성하는 다수정당과 체제내적인 
야당들간의 정권교체라는 의회주의 특유의 기능방식은 바이마르공화국 동안에는 실현될 수 없었다. 이미 헌법제정국민회의에서부터 바이마르연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정당들(독일민족국민당, 독립사민당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독일국민당)은 정부의 정책 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의 기초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1920년 7월선거에서 바이마르연정이 과반수의석을 상실함으로써 더욱 심각해졌다. 이 선거에서 기존에 연정을 구성하였던 사민당, 독일민주당, 
카톨릭중앙당의 의석비율이 78%에서 44.6%로 급전직하했던 반면에 야당들은 많은 의석을 추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직접적인 계기는 
쑼과 뤼트비츠의 쿠데타시도(Kapp-Luttwitz-Putsch)에 따른 정정불안으로 여당들이 신뢰를 상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보다 깊은 이유는 
이미 1919년부터 새로운 헌법질서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좌우의 반체제세력들이 정비되고 강화되었던 데에 있었다. 바이마르연정의 정당들이 더이상 
의회의 다수를 점하지 못하게 되면서 1920년이후에는 연정을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세가지로 제한되었다. 첫째의 가능성은 
&quot;부르조아동맹&quot;(Burgerblock)이라고 불리우던 중앙당과 독일민주당으로부터 독일민족국민당까지의 연정이었고, 두번째의 가능성은 사민당으로부터 
독일국민당까지의 정당을 포괄하는 대연정이었고, 마지막의 가능성은 중도우파정당들의 소수내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세가지의 가능한 방식 중 어떤 
것으로부터도 안정된 연정이 구성될 수 없었다. 앞의 두가지의 경우에는 외교정책과 경제사회정책의 기본노선에 대한 반목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도정당들의 소수연정은 사민당이나 독일민족국민당의 지원 또는 최소한도의 인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는 주어진 현안에 
따라서 항시 변하는 다수의 지원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lt;br&gt;&lt;br&gt;물론 이러한 연정구성의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연정을 구성하는 주체인 정당의 
수시로 변하는 정책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연정구성과 관련하여 특히 어려움을 겪은 것은 좌우 양익의 정당인 사민당과 독일민족국민당이었다. 
사민당은 - 1924년의 수개월 동안을 제외하고는 - 1932년까지 라이히하원에서 최대의 원내교섭단체였으며 동시에 바이마르공화국이 붕괴되는 
시점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헌법이 부여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민당의 역할은 자신이 점하는 정치적 중요성에 미치지 못하였고 따라서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사민당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충족될 수 없었다. 바이마르공화국으로의 이행과정에서 다수사민당은 자유민주주의적인 
경기규칙에 기초하여 노동자와 시민계급이 공존하고 협력하는 체제로의 정치적 결단을 내린 바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사민당이 자신의 의석수에 
상응하여 정부구성에서 적극적으로 지도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사민당의 유보적 자세가 
증대되었다. 1920년의 선거패배 후에 사민당은 연정에서 이탈하였다. 독립사민당의 좌파가 공산당과 연합하고 잔류세력이 사민당으로 재통합됨으로써 
사민당내의 좌파가 강화된 후에는 사민당은 부르조아정당들과의 연정구성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시민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최종목표를 추구하는 강령과 브루조아정당들과의 협력이 불가피하였던 정치의 현실과의 괴리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21년의 괴어리츠강령(Gorlitzer Programm)은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변화하려는 개량주의노선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1925년의 하이델베르크강령(Heidelberger Programm)에 의해서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이렇게 
해서 사민당은 원칙의 문제와 권력의 문제 사이에서 명료한 균형점을 찾는 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이 - 특히 외교정책상의 
문제일 경우에는 극우민족주의적인 우파세력의 반대로 - 사민당의 협력없이는 결정될 수 없었으므로 사민당은 온건부르조아연정을 직접 참여하지 않은 
채로 지원하였다. 이로써 사민당은 야당의석에 앉아 있는 절반의 여당이라는 매우 복잡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사민당은 
라이히에서와는 달리 오토 브라운(Otto Braun)의 지도하에 카톨릭중앙당 및 독일민주당, 그리고 때로는 독일국민당과 함께 안정된 연정을 
지속하여 바이마르공화국의 안정에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 &lt;br&gt;&lt;br&gt;우익정당인 독일민족국민당은 연정구성에 있서 더욱 복잡한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민족국민당은 한편으로는 의회민주주의라는 체제를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지지세력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기 위해 현존하는 정치공간에서 가능한 
최대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당은 일관된 반체제와 바이마르체제와의 제한된 협력이라는 두가지 선택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1924년이후 정세가 안정되기 시작하자 독일민족국민당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이익단체들로부터의 중도부르조아정당과의 연정에 참여하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독일민족국민당은 1925년과 1927년에 부르조아동맹내각에 참여하였다. 독일민족국민당의 
공화국체제에 대한 이러한 접근과정은 1928년에 철저한 반바이마르노선을 추종하던 후겐베르크(Hugenberg)가 당내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온건세력이 당을 떠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독일민족국민당이 나찌당과의 협력노선을 추구하면서 부르조아동맹에 의한 정부구성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lt;br&gt;&lt;br&gt;카톨릭중앙당의 경우는 카톨릭을 종교로 지닌 다양한 사회적 집단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기본적으로 좌우파의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중앙당은 이러한 유연성 때문에 1919년의 헌법제정국민회의부터 1932년에 중앙당출신의 수상이었던 
브뤼닝(Bruning)이 실각할 때까지 모든 라이히정부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정구성에서 중심역할을 하였다. 중앙당 내부의 당권은 
바이마르공화국이 경과하면서 점차 우경화하여 1928년에는 보수적인 신부인 카스(Kaas)가 당수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양상이 
라이히대통령주도로 구성된 브뤼닝내각 치하에서 더욱 가속화되면서 사민당과 협력하려는 노선은 극도로 약화된다. &lt;br&gt;&lt;br&gt;두개의 자유주의정당들은 
사민당과의 연정을 회피하던 독일국민당의 우파를 제외하고는 세가지의 연정구성방식에 모두 개방된 입장을 취하였다. 문제는 오히려 자유주의정당의 
전통적인 지지세력이 점차 붕괴하는 것이었다. 바이마르공화국 초기만해도 20%를 상회하던 두 자유주의정당의 득표율합계는 1928년까지 약 3분의 
2로 줄었다가 1932년에는 전체투표의 2%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자유주의정당에 대한 투표행태의 변화는 1920년에는 독일민주당에서 
독일국민당으로 이전하는, 즉 자유주의정당간에 이전하는 양태로 나타났지만, 1924년에는 자유주의정당의 지지표가 독일민족국민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대다수는 1928년선거에서 독일민족국민당을 떠나지만 이들은 다시 자유주의정당으로 돌아오지 않고 의회민주주의에 비판적이던 
중산층정당이나 농민정당 등 군소이익정당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중도자유주의정당들의 약화로 인해서 당해 정당 뿐만이 아니라 전체 정당체제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치상황 속에서 좌우양익의 정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설사 한 정당이 과반수의석을 
차지하였다고 하여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좌우양익정당인 사민당과 독일민족국민당의 상호불신으로 인해서 이러한 정부구성은 정국의 불안을 
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도정당들은 연립정부의 정책이 노동자세력과 브루조아세력이 정치적으로 생존하는 기초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장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좌우양익정당들의 입장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상호 최소한도로 인내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유주의정당의 약화는 동시에 정치제제 전반의 양극화에 대한 안전보장수단의 동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lt;br&gt;&lt;br&gt;&lt;br&gt;3. 정당체제의 
양극화와 의회민주주의의 위기 &lt;br&gt;&lt;br&gt;&lt;br&gt;정치체제의 양극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 1928년의 선거결과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 
선거에서 사민당이 약진한 반면에 브루죠아동맹연정에 참여했던 정당들은 모두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이 선거결과에 따르자면 사민당의 주도하에 
대연정을 하는 것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이른바 브루조아동맹은 더이상 과반수의석을 지니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독일민족국민당은 이 선거 이후에 명백한 반바이마르노선을 선택하였다. 또한 중도정당들이 소수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전체유권자의의 4분의 1만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들의 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사민당과 독일국민당 간에 난항을 
거듭하던 협상 끝에 사민당의 헤르만 뮐러(Hermann Muller)를 수반으로 하는 대연정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이 대연정의 존속기간동안 내내 
연정 내의 좌우익정당간에 노선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는 슈트레제만이 1929년에 사망한 후에 독일국민당이 우경화하면서 더욱 
심각해 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민당 역시 사회파시즘이론에 기초한 공산당의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지지기반을 방어해야 했기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는 데에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였다. &lt;br&gt;&lt;br&gt;대연정은 1930년 3월에 실업보험제도를 개선하는 문제에 대한 사민당과 
독일국민당과의 협상이 결렬되는 것을 계기로 종료되었다. 대연정붕괴의 원인으로 사민당의 전술적인 미숙함과 의회주의현실에 대한 사민주의의 장기적인 
복안의 부재도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 최후의 의회주도정부가 실패한 보다 깊은 원인은 부르조아세력이 우경화하면서 
사민주의와의 협조를 거부하는 경향이 강해진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의회민주주의적인 경기규칙을 지키는 한에서 사민당의 참여를 배제한 정부구성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회민주주의체제를 포기하는 정치적 대안이 점차 강하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대안은 이미 대연정이 붕괴되기 
이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되었는데 그 중심은 라이히대통령인 힌덴부르크와 그의 주변세력 및 군부지도자인 슐라이혀장군 등이었다. 의회민주주의의 대안을 
찾으려는 작업은 어차피 의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두지 않았던 정치적 우파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이해세력을 넘어서 점차 정치적 중도파 및 공업을 
기반으로 한 이해세력에서도 적지 않은 호응을 얻어 가게 되었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gt;IV.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위기와 정당국가의 
붕괴&lt;/b&gt; &lt;br&gt;&lt;br&gt;&lt;br&gt;1. 브뤼닝내각과 바이마르정당의 약화 &lt;br&gt;&lt;br&gt;&lt;br&gt;대연립정부가 퇴진한 사흘 뒤인 1930년 3월 
30일에 브뤼닝의 대통령내각(Prasidialkabinett)이 등장하였다. 이로써 용의주도하게 의회와 정당을 정치체계로부터 배제하려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이는 동시에 수많은 헌법침훼(Verfassungsdurchbrechung)를 동반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브뤼닝내각은 부르조아정당들 
출신의 정치인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의회다수의석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의회해산을 위협하든지 또는 라이히대통령의 긴급명령을 통해서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0년 6월에 의회가 해산되었다. 의회해산 이후 9월에 실시된 선거는 경기가 급속도로 후퇴하는 속에서 
이루어졌고 급진정당들이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 나찌당의 의석수는 12석에서 107석으로, 공산당은 57석에서 77석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선거결과에 의해서 브뤼닝내각을 지지하는 적극적 다수세력은 라이히하원에서 형성될 수 없게 되었다. 반브뤼닝내각의 소극적 다수가 
구성되지 않은 것은 사민당이 브뤼닝내각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이를 인내하는 정책을 선택한 덕택이었다. 브뤼닝내각의 재임기간 동안에 의회와 정당의 
권력과 영향력은 빠른 속도로 감소했던 것에 반하여 국가권력의 중심은 이에 비례하여 행정부로, 특히 라이히대통령과 그의 보좌역들에게로 이전되었다. 
브뤼닝내각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우파쪽으로의 세력확산을 시도하였지만 극우민족주의적인 반체제노선을 걷던 독일민족국민당, 
철모회(Stahlhelm), 나찌 등으로부터는 여전히 타도대상이었다. 게다가 1931년 여름부터 경제위기가 가속되면서 브뤼닝내각은 민심으로부터도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1932년에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자 국방부 고위직에 있던 슐라이혀는 브뤼닝내각을 보다 더 우경화된 대통령정부로 
교체하려고 시도하였다. 슐라이혀는 동시에 자신이 주도할 새로운 내각에 대한 나찌당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히틀러와 협상하였다. 여기서 
슐라이혀는 나찌운동의 &quot;긍정적인&quot; 요소들을 새로이 건설할 권위주의체제에 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하였다. 이후에 전개된 브뤼닝의 실각, 
파펜(Papen)을 수상으로 하는 이른바 &quot;민족통합&quot;(nationale Konzentration)내각의 성립(이 내각에서 슐라이혀는 국방부장관에 
취임하였다), 라이히하원의 해산, 나찌돌격대(SA)금지의 철회 등은 슐라이혀와 히틀러의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펜과 
슐라이혀가 주도하는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32년 7월 20일에 사민당이 주도하던 프로이센주정부에 대해서 이른바 
&quot;라이히집행&quot;(Reichsexekution)을 행하였다. 1932년 4월의 선거 이후에 새로운 주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임시정부로 있던 
프로이센주정부는 라이히군대의 점령에 의해서 강제로 퇴진되었다. 이로써 사민당은 최후의 권력거점을 상실하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에 
봉착하였다. &lt;br&gt;&lt;br&gt;&lt;br&gt;2. 파펜내각과 나찌의 약진 &lt;br&gt;&lt;br&gt;&lt;br&gt;1932년 7월 31일의 라이히하원선거에서 좌우의 
급진정당들은 다시 한번 약진에 성공하였다. 나찌당은 230석을 획득하여 최대의 원내교섭단체로 되었다. 공산당은 이 선거에서 89석을 차지하였는데 
양당의 의석을 합치면 라이히하원 전체의석인 608석의 과반수가 되었다. 하지만 양당이 협력을 할 가능성은 전무하였으므로 이는 소극적 과반수를 
의미했다. 이 선거 후에 나찌당은 파펜내각을 인내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주도하에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카톨릭중앙당의 선택이 주목되었는데, 이는 중앙당 출신인 브뤼닝의 실각으로 라이히대통령에게 실망한 상태에서 선거결과에 의해서 나찌당과 함께 
원내다수를 형성할 수 있었던 때문이었다. 중앙당은 파펜내각에 반대하는 나찌당의 노선에 접근하여 8월 30일에 괴링(Goring)이 
라이히하원의장에 선출되는 것에 협조한다. 파펜내각이 새로이 구성된 라이히하원에서 극소수인 독일민족국민당과 독일국민당으로부터의 지원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해지자 라이히대통령 힌덴부르크는 의회를 재차 해산해야 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의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파펜내각과 
의회로부터 최소한 인내되던 브뤼닝내각의 차이점이다. 즉 바이마르헌법의 구조 속에서 대통령주도의 정부는 단지 의회가 이를 인용하는 한에서만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서 의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통령내각은 존속할 가능성이 없었다. 의회가 해산된 후에 파펜은 
선거를 무기한으로 연기하여 의회가 없는 상태에서 통치하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이 구상은 중앙당과 나찌당이 라이히대통령을 헌법위반으로 
국사재판소(Staatsgerichtshof)에 탄핵할 위험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였다. &lt;br&gt;&lt;br&gt;1932년 11월의 의회선거에서 나찌당은 
라이히하원에서 최대의석을 지닌 교섭단체로 남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이백만표가량의 득표수가 감소되었다. 득표수의 감소는 곧이은 튀링겐의 
지방선거에서도 계속되었다. 당시 나찌운동이 이미 그 정점을 지나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징표는 그밖에도 발견된다. 히틀러의 입장은 자신이 수상이 
되는 조건 하에서만 정부구성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당내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입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당내&quot;좌파&quot;의 
지도자였던 슈트라써(Strasser)는 히틀러의 수상취임과는 무관하게 정부구성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나찌당과 나찌돌격대 내부의 
갈등도 격화되었는데 이는 나찌운동의 추종자들이 매우 다양한 사회적 배경의 복합체였던 결과였다. 하지만 파펜의 입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국대통령 힌덴부르크는 여전히 그에 대한 신임을 표명하였지만 라이히하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