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기다림에 대한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눈다. 감쳐둔 가슴속 속내를 하나둘 꺼내들면서 드는 미안함은 어쩔 수 없다. 누구보다도 바쁜 성격임을 이젠 잘 알텐데 감정 만큼은 서툴고 느리기만 하다. 나에 대한 주저함이 너에 대한 것으로 느껴질 만한 몇가지들. 며칠만에 깊디 깊어진 소통의 숙제란 생각을 한다.
젊은 시절 이외수의 글에 울컥한 적이 있다. 오늘 그 글이 생각난다. 깊은 관련은 주지 못해도 이 글이 서로가 서로에게 편하게 읽어줄 편지쯤이랄까.

기다리는 자는, 기다릴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자는 행복하다.
그리고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초조한 혼자만의 병이었던가.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어떤 것을 기다릴 때 질긴 섬유질처럼 시간은 우리의 살과 정신 속에 조직을 뿌리 뻗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플라스틱 인조 인간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우리 곁을 스쳐가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병을 앓고 있을 때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는 더 이상 건져 먹을 정도 사랑도 없음을 다 알아 버렸다는 달관의 표정으로, 삭막한 문명이 거리 속에 바쁘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가 기다림 하나로 젊음의 한 부분을 이렇게 우울 속에 적시며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도 가끔 생각해 보았고, 더러는 술과 유행가와 싸구려 사랑, 그리고 돈이라는 것과, 쾌락이라는 것과 안일이라는 것들의 유혹에 곁눈질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잇다. 우리가 앓고 있는 이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병이 술이나 돈이나 안일이나 쾌락 따위의 병보다는 한결 앓아 볼 가치가 있는 열병임을.
아기들은 한 가지씩 새로운 병을 앓으면서 한 가지씩 새로운 재롱을 익힌다. 고통 없이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신의 옷섶 안에 절대로 들어 있지 않는 법이다. 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만남은 우리를 행복 속에 몰아 넣는다. 기다림이 진실하면 진실할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쓰라리고 아픈 형벌이 된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것인가?
그대여 생각하라. 깊이 생각하라.
인간은 타락하고 사랑은 녹슬었다는 말들이 흉흉한 소문으로 전염병처럼 나돌고 있는 시대. 사람의 목숨이 자동차 밑에 깔려 돈으로 계산되고 집집마다 낮에도 굳게 대문이 닫혀 있는 시대. 담 위에 번뜩이고 잇는 날카로운 불신의 유리 조각들. 천주교에서 기르는 맹견. 병원 앞에서 돈 없이 죽은 생후 3개월난 아기. 염불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일부 성스러운 계급의 옆모습. 그리고 별 볼일 없는 그대의 젊음.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 세상은 그렇게 어둠뿐으로만 조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그대가 남아 있다. 그대가 기다려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그대는 이제 알고 있다. 인생이 어릴 적 땅 따먹기처럼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님을. 최소한 그대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하자. 그때 정신의 질긴 밧줄로 시간의 발목을 묶어 놓고 집요하게 그대는 기다림을 계속하기로 하자.
그리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묻지 말기로 하자. 주택복권 당첨을 기다리든, 송충이 엄지발가락에 무좀이 생기기를 기다리든 그건 그대의 자유니까. 그러나 잊지는 말 것. 최소한 그대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기 위해서는 쥐나 바퀴벌레나 쇠비름 따위와는 한결 나은 점이 있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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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19:19
EDIT
제 보폭대로 제 호흡대로 천천히 가는.. 진심을 담은 소통의 여정은 그 끝이 멀게 보이더라도 별로 힘에 부치지 않는다는 지혜를 알죠. 이젠.
** 무더운 가을입니다.
2008/09/10 2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