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예감을 동반한다

PUBLISHED 2008/07/02 21:39
POSTED IN 일상의 기억들

자신도 모르게 찍힌 사진을 본 적 있는가?

지난번 인터넷을 디비다 10년 전쯤의 나와 친구로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쭈글쭈글 다려지지 않은 면바지, 반팔을 마다하고 늘 입고 다녔던 몇 겹을 걷어 올려 더위를 이겨낸 베이지색 긴팔 남방, 그리고 덥수룩한 머리칼과 두꺼운 안경을 낀 그는 영락없이 나이다. '여자들 스타일 중 근사한 게 어떤 거야?' 라고 그가 물었을 때 그냥 '청바지와 흰 티셔츠'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그는 그 일을 계기로 늘 청바지와 흰면티를 교복 삼아 입고 다녔다. 사진 속 그 또한 언제 처럼 청바지와 희면티, 단발과 긴머리 중간의 어중간한 생머리(그 당시 그는 늘 그게 황금비율이라 우겼다.), 그리고 키높이 10cm 구두와 함께인 그 또한 영락없는 그이다.  

거리를 걷는 일이 있으면 항상 걷는 위치를 가지고 자주 다투었다. 서로 왼쪽을 고수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잘 모르겠다. 매번 나의 양보로 그가 왼쪽에 서는 일이 많았지만,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짝퉁 닥스 체크무늬의 우산을 같이 쓰는 날이면 우산을 든 오른팔이 저릴 거란 그의 사소한 배려로 내가 왼쪽에서 걷는 날도 있었다.

사실 사진 속 주인공이 나와 그인지는 10여 년 세월의 흐름으로 확신은 없다. (근데 진짜 많이 닮았다) 하지만 사진 한 장으로 오래전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것은 행운 아닌가. 오늘 와이퍼를 꽤 고생시키면서 과천을 지나 서울로 비맞으며 운전하는데 오래전 다운해둔 이 사진이 생각나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는 예감을 동반한다.

오늘쯤은 그대를 거리에서라도 우연히 만날는지
모른다는 예감.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엽서 한 장쯤은 받을지
모른다는 예감.

그리운 사람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
진다는 사실을 비는 알게 한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아픔이다.

이외수.


2008/07/02 21:39 2008/07/0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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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의 느낌이 좋아요...
    함께 걷는 이들의 뒷 모습. ^^
    2008/07/07 11:36
  2. "함께"란 말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시침 뚝 떼고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것이 서로를 연결해 주는 끈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함께"가 줄어든거 같아 조금은 서글풉니다. 술을 마시거나 우산을 나누거나 대화를 하거나.. 예전만 못하거든요. 에고.. 나이가 뭔지..뭥미;;;^^
    2008/07/08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