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동렬이다

PUBLISHED 2008/05/28 23:03
POSTED IN 질투는 나의힘

※ 어제 오늘 올라온 그의 글을 시간내서 정독해 보라.
전율이 느껴지는건 나뿐인가?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낚였다"
 - '우직한 소가 뒷발로 쥐 잡는다'

●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기는 방법은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의 전술은 첨예한 긴장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뿐이다. 자기 절제력과 통제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긴장에 강하기 때문이다. 지성인과 무지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배운 사람이고 저쪽은 깡패다. 그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통신사 일행이 대한해협을 건너다가 폭풍을 만났다. 선원들이 두려워하며 일제히 정사 조엄 앞에 엎드려 간청하였다. 정사가 저고리를 벗어 바다에 던져야 노한 해신을 달랠 수 있다는 거다.

조엄은 겁 먹은 선원을 꾸짖고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음에 속하는 귀신이 양에 속하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논리다. 결국, 파도는 가라앉았다. 선원들은 해신을 굴복시킨(?) 조엄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그 차이다. 소인배도 학습하여 곧잘 지식인의 흉내를 내지만… 위기를 당하면 그 천박한 본질이 드러나고 만다. 훈련되지 않은 소인배는 자기 내부에서의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인배들은 필요한 것을 항상 외부에서 조달한다. 출세의 끈도 타인을 이용하여 얻은 것이다. 그러나 리더가 되어 고독한 결단을 해야 할 때… 두리번거리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때… 가면은 벗겨지고 쥐의 모습이 드러나고 만다.

정치는 간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21세기는 고도의 복잡한 사회다. 삽빠들은 이러한 긴장상태를 겪어본 적이 없다. 학생운동 등으로 활동해 본 경험이 없다. 긴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역사의 중심에 서 있지 않고, 그 역사의 현장을 지키지 않고… 바깥에서 겉돌던 자들은 긴장을 겪어본 적이 없으므로 곧 흥분하여 홧김에 싹쓸이 전술을 쓰다가 제 발등을 찍는다.

프로야구 감독들이 징크스에 매달리는 이유는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불안, 초조해지면 뭐라도 해야 한다. 가만있으면 미칠 것 같다. 징크스 지키기 했으니 뭐라도 한 셈이 되어 스트레스를 이기는 거다.

지성인이 못 되는 소인배들은 기어코 저지르고 만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건드려 보다가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만다. 저들은 지금 시험에 들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누가 대한민국호를 통제할 자격이 있는 선장감이냐다. 사회가 발전하고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갈등이 복잡하고 첨예해진다. 풀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노무현은 모두 해결해 보였다.

통합당은 뒤로 멀찌감치 도망갔다. 민노당은 치고 빠진다. 잽싸게 한 발을 들이밀어 이익을 취하고 번개같이 내뺀다. 딴나라는 오도방정을 떨며 함부로 날뛴다. 눈 질끈 감고 허공에다 주먹을 마구 휘두른다.

우리는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그 긴장의 최전선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되… 그 긴장의 폭풍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칭찬이고 비판이고 모두 감수하면서 태산처럼 의연해야 한다.

● 우리가 대선에 진 이유는 딱 하나다. 판돈이 적었기 때문이다. 저쪽은 전 재산 + 인생을 걸었는데, 우리는 단지 명성을 배팅했을 뿐이다. 우리는 잃어도 명성을 잃을 뿐 더 이상 손해 볼게 없다.

그러나 저쪽은 어떤가?

종부세 태풍을 맞아도 저쪽이 맞는 거다. 뉴타운이든 대운하든 저쪽은 인생이 걸려있고, 생사가 걸려있고, 투기해 놓은 전 재산이 걸려있다. 그러나 돈도 없고 뭣도 없는 우리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다.

경마장에서 3천 원 건 사람과 3천만 원 건 사람이 있다면 누구 말이 더 신뢰가 가겠나?

국민은 정치인의 인격을 믿지 않고 판돈을 믿었다. 저들은 잘못되면 재산이 축나는데 우리는 잘못되어도 축나는 게 없다. 유권자가 직관적으로 봤을 때… '밑져봐야 본전인 운동권 한량들'에게 맡길 수 있겠나?

우리가 이기려면 우리도 인생을 걸어야 한다. 지난 10년의 좋은 시절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40대 기수론 이래 30년이다. 김대중은 인생 전부를 걸었다. 청문회 스타 이후 20년이다. 노무현 역시 인생을 걸었다.

정동영은?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그에게는 애초에 배팅할 밑천이 없었다. 손학규는?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문국현은? 3개월짜리 정치신인이다. 판돈 없이 날로 먹으려 든다면 공짜 좋아하다 머리까진 전두환이다.

지금 우리가 인생을 걸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 지금 나라가 망한 판인데 FTA 따위가 문제란 말인가? FTA가 오늘 되느냐 내일 되느냐는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영영 물 건너 가버려도 상관없다. FTA에 집착하는 것은 민노당의 일회성 건수주의다.

국민 다수가 등을 돌려도 10퍼센트만 확실한 자기편으로 만들면 남는 장사라는 것이 민노당의 틈새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가 다음에라도 집권하려면 집권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것은 이명박이 못 하는 FTA를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오직 우리만이 젊은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질은 능력의 문제인 것이다.

FTA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역사의 도전을 회피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FTA는 세계사의 조류다. 우리가 숨는다고 물러가 주는 일회성 파도가 아니다. 큰 파도를 타고 넘는 방법은 전속항진뿐이다.

FTA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새로운 세계사의 룰이다. 머리 좋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우리가 더 머리가 좋으므로 이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온갖 부작용들은 내부적인 정치력의 문제다.

우리가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 방향으로 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으로 유권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큰 파도와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선장감이냐다.

FTA고 쇠고기고 모두 노무현이 벌였다. 이명박이 주제에… 멋도 모르고 덥썩 미끼를 물었다가 노무현에게 낚인 것이다. 속으로 노무현을 욕하겠지만 원래 함량 미달인 자들이니 욕할 자격이 없다.

FTA는 양날의 칼이다. 적을 죽일 수도 있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 노무현이 겁도 없이 그 긴장된 태풍 속으로 항해하여 들어간 것이다. 스트레스가 두려운 이명박 눈 질끈 감고 방망이를 휘둘러버린 것이다. 자살골 먹었다.

지금은 고도의 항해술이 필요한… 지극히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런 고도의 민감한 상황은 국민과의 합리적인 소통능력을 갖춘 노무현 그룹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능력의 문제다.

FTA고 쇠고기고… 노무현이 역사의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기에 이명박을 자승자박의 덫에 가둘 수 있었다. 이명박은 노무현보다 뛰어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하여 서둘렀지만 노무현보다 무능하다는 성적표를 받았다.

● 개혁은 절대로 시스템이다. 사회가 발전했으므로 그 진보를 반영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역사가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시스템은 역사의 흐름에 맞는 의사결정의 시스템+신뢰의 시스템+의사소통의 시스템이다.

우리가 그 새로운 시스템으로 조중동도, 재벌도, 기득권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5년, 조중동도 재벌도 기득권도 교장들도 교회도 스님도 우리가 건설한 그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기 때문에… 우리는 대선에 패배한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서 안 된다.

우리 길들여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저들을 길들여야 한다. 조중동도 재벌도 기득권도 교장들도 교회도 스님도 길들여야 한다. 그 사람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백 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한다.

저쪽은 돈이 많으므로 개인기로 이긴다지만 이쪽은 절대로 조직력이 아니면 안 된다.

저쪽은 숫자가 많으므로 마타도어, 지역감정 조장 등의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있는 자원을 최대한 가동하면 되지만 우리는 숫자가 부족하므로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이심전심의 개방적 시스템을 새로 건설하여 젊은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민노당의 점조직 시스템과 엘리트주의로는 대중동원이 불가능하다. 대안없이 이것도 반대 저것도 반대하는 식으로는 10프로를 얻을 뿐이다. 정권을 잡으려면 비전을 제시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 합법이냐 불법이냐 하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민주사회에서 집회, 시위는 원래 합법이다. 단지 세부적인 규정을 어겼다는 건데 그것을 진압대상으로 보는 것은 명백히 저들의 정치적 판단이다.

불법이면 '불법입니다.' 하고 통보해주면 된다. 불법이라는 사실과 불법이므로 차고 때리고 잡아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별개의 사항이다. 국가가 모든 개인의 불법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공산국가라면 몰라도.

돌을 던지거나 기물을 파괴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범죄일 수 있고 공권력이 개입하여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러지 않는 한 전경은 합법이건 불법이건 시위대를 보호해야 한다.

닭장차로 길을 막는 것이 더 불법이다. 닭장차로 에워싸고 도로를 차단하여 거리행진을 막는 것이 더 큰 불법이다.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 되고… 웃기는 수작이다. 국민이 주인인데 무슨 소리야!

시위의 목적은 정권의 폭력성을 노출하는 데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로 끌고 가는 것이다. 거기에 정권이 걸려들면 끝장나는 거다. 시민들은 이명박정권이 낚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정권은 일반시민들이 시위에 짜증을 내게 만드는 전략을 쓴다. 양쪽 다 의도를 가지고 서로 상대가 낚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폭력을 쓰면 낚인 것이고 저들이 먼저 폭력을 쓰면 역시 낚인 것이다.

일단은 저들이 유리하다. 조중동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디카가 있고 핸드폰이 있고 인터넷이 있다. 이 상태로 계속 밀어붙이면 우리가 이긴다. 왜냐하면, 저들은 아슬아슬한 긴장상태에 약하기 때문이다.

임계에 다다르면 폭발한다. 지성이 결여된 자들은 반드시 사고를 치고 만다.

● 빈민운동 하던 사람들이 변절하여 한나라당에 갈 확률이 높다. 이건 나의 경험칙이다. 뉴라이트들이 원래 뭐하던 자들인지 그 면면을 살펴보라. 달동네에서 빈민들 상대로 선교운동 했던 자들이 많다.

제정구, 김문수, 이재오 등 먹고사니즘의 화신들이다. 영혼을 팔아서 취직하겠다는 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본질이 한나라당이다.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 중에서 물질을 앞세우는 자들은 결국 한나라당에 가고 만다.

원문 - http://www.drkimz.com/bbs/view.php?id=notice&no=87

먹삽 대 막삽, 강준만 대 이명박
 - '시민의 권력은 광장에서 태동한다'

이 시대의 화두는 소통이다. 너도나도 소통을 말하고 있다. 강준만도 주제에 한마디 거들었나 보다. 그러나 교묘하게 본질을 회피하고 독자를 기만한다. 더러운 강준만! 지성이 결여된 비겁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세 치 혀를 놀려 현학적인 단어를 주워섬길 뿐…. 그 지식은 영혼이 없는 죽은 지식이다. 강준만! 당신은 소통하지 못한다. 광장을 메운 저 젊은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코드가 맞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소통 부재를 탓할 일이 아니라 강준만 너 자신의 소통실패를 먼저 인정해야 할 터. 눈치 보다가 뒤늦게 나타나서 훈수하기는.

개나 소나 명박이나 준만이나 소통을 말하지만 에둘러 말할 뿐이다. 교묘하게 본질을 비켜간다. 장난하자는 건가. 그게 다 말장난이다.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왜? 두렵기 때문이다. 진실이 참으로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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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란 무엇인가? 말로 떠드는 건 잔소리에 불과하다. 쥐럴이고 옘병이다. 진정한 소통은 등을 돌리고 있는 상대방을 이쪽으로 돌아앉게 만드는 것이다. 국민은 이미 등 돌리고 있다. 명박이 무슨 말을 해도 들을 태세가 아니다.

이명박이 강준만들의 조언을 들어서 용의주도하게 대처했다면 촛불시위는 없었을까? 천만에! 타이밍의 문제일 뿐 언제라도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오히려 집권 초에 터져 나온 게 이명박에겐 행운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하자!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거리로 뛰쳐나오고 싶은 목소리들이 이전부터 있어 왔다. 말들이 목구멍에 꽉 차 있었다.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그 말들의 오고 감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소통의 장벽 '조중동'이 버티고 있는 한… 한국인들은 언제라도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세팅되어 있었다.

대한민국호의 원초적 실패다. 인정해야 한다.

입이 있고 말이 있는데… 자연히 물이 흐르는데… 누군가가 그 물길을 인위적으로 막으면 언색호의 수위가 높아질 뿐이다. 그 언색호가 무너지면 재앙이 일어난다. 이것이 진실이다. 누가 국민의 입을 틀어막았는가?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지금 광장에서 나오는 목청은 '독재타도'다. 이것이 진실이다. 쇠고기가 본질이 아니고 FTA가 본질이 아니란 말이다. 이 바보야! 이 멍청아! 그렇게도 못 알아듣나?

생각하라! 왜 이 시점에 독재타도 구호가 나오는가?

그때 그 시절 6월 항쟁 때 나온 구호가 무엇이었나? '호헌철폐 독재타도!' '숨 막혀서 못살겠다. 말 좀 하고 살아보자.' 이거였다. 그렇다. 여전히 국민은 숨이 막히다. 숨 막혀서 못 살겠다. 왜 국민들이 숨이 막힐까?

잘못된 협상은 재협상 하면 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막혀버린 숨구멍은 누가 뚫어줄까? 이거 뚫어주지 않으면 광장에서의 소란은 끝없이 계속된다. 이명박 물러나고 근혜가 와도 몽준이 와도 계속된다.

그 숨막힌 국민들이 지난 10년간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가 '효순이 미선이 촛불시위' 그리고 '월드컵 길거리 응원', '탄핵반대' 등으로 간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이거 알아야 한다.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이 단지 축구시합 1승을 바라서 모였을 거라고 믿나? 멍청아! 16세 소녀들이 갑자기 의식화되어서 반미운동 하려고 효순이 미선이 촛불시위 한 거 아니다. 밥통아!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 먹나? 눈치도 없나?

무엇인가? 김대중, 노무현 10년간 시민들이 참은 것이다. 왜? 김대중, 노무현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길거리에서의 억눌린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저 외침들은 실상 지난 10년간에 터져 나와야 했다.

왜 지금인가? 그동안은 김대중, 노무현이었기 때문에 참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김대중, 노무현 없으니 말릴 사람도 없고…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것이다. 그렇다. 지금 저 목청들을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은 김대중, 노무현밖에 없다.

김대중, 노무현이 말리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저 목소리 가둘 수 없다. 통제할 수 없다. 김대중, 노무현은 나서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되나? 노무현 세력이 다시 결집하여 대사회적인 신뢰의 축을 구축할 때까지 진통은 계속된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그 어떤 지식인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진중권도, 강준만도, 오마이뉴스도, 한겨레도, 경향도, 진보도, 수구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본질은 같다. 하나다. 그런데 왜 김대중 때는 '월드컵 길거리 응원'으로 터져 나오던 함성이 이명박 때는 '독재타도'로 터져 나오는가? 바야흐로 시민의 권력이 태동하려는 조짐인 것이다. 그 자궁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운이 있다. 밑바닥에 에너지가 고여 있다. 그 기운은 핑계만 있으면, 구실만 있으면, 작은 틈새만 있으면 나온다. 쓰촨성 지진처럼 얕은 지각을 뚫고 터져 나온다. 분출하고야 만다. 마침 광우병 쇠고기가 빌미가 된 것이다.

지금 민노당들은 FTA반대 쪽으로 흐름을 유도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전술적 기만술책들이 그들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효순이 미선이 촛불시위의 목적은 반미가 아니다.

물론 반미도 FTA반대도 하나의 요소다. 그러나 본질은 아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다는 것이 근원에서의 본질이라면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것은 표피의 욕망이다. 둘은 다르다. 표피의 욕망은 바뀔 수 있다.

자장면과 짬뽕은 선택되는 것이다. 배가 고프다는 본질이 진짜다. 그렇다. 그들은 배가 고픈 것이다. 굶주려 있다. 그 하나의 본질이 FTA반대라는 자장면이나 혹은 쇠고기반대라는 짬뽕으로 다양하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새벽 3시 넘어서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사람들의 본심이 무엇인가?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이 무슨 수를 써서 봉합하고 달래고 진정시켜도 또 다른 구실로 터져 나온다. 상황은 계속된다.

광장의 카나리아들

예전에 광부들은 갱도 내의 유독가스에 대비하기 위해 새장을 가져갔다. 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질식하여 횃대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대피한다. 아스팔트 위로 쏟아져 나온 저들이야말로 광산의 카나리아임을 알아야 한다.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뭘 줘도 불평 없이 잘 먹는 착한 고객이다. 하나는 이것저것 불평하고 밑반찬을 끝없이 요구하는 입맛이 까다로운 고객이다. 어느 고객이 진짜 고객일까? 당신이 식당주인이라면?

당연히 입맛 까다로운 고객이 진짜다. 그들을 끌어들이면 동료 10여 명이 그냥 따라온다. 왜? 가장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회사동료와 함께 어느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갈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예민한 더듬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갱도 속의 카나리아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말 많은 소수가 실로 역사의 향방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그들이 역사를 주도해 왔다.

침묵하는 다수는 역사적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는 촉수가 없다. 그들은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무관심한 다수는 팔짱 끼고 상황을 주시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에 도달하면 결국 극성맞은 쪽의 손을 들어준다.

역사이래 늘 그래 왔다. 무엇인가? 지난 5년간 노무현은 국민과 바르게 소통해 왔다. 모든 가능성을 드러낸 것이다. 모든 위험을 표면에 노출시켜 폭로한 것이다. 모든 불안요소를 노출시켰다. 결국, 온갖 갈등이 야기되었다.

더러운 강준만들은 이를 두고 소통실패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은 위험은 은폐하고, 국민의 눈과 귀는 틀어막고, 지역의 토호들에게 한 숟갈씩 퍼줘서 각개격파하게 하는 것이다.

시골농부의 불만은 통반장이 진압하고, 학생의 불만은 선생이 진압하고, 시민의 불만은 목사가 진압하고, 노동자의 불만은 고용주가 진압하고 대신 그 중간세력인 통반장, 교장, 목사, 고용주들에게 퍼주고.

이 사회에서 발언권 있고 목청 큰 조중동에게 한 상 챙겨주고, 말 많은 재벌에게도 한 상 안겨주고, 국회회원들에게도 한 상, 강남 기득권에도 한 상, 교회세력에도 한 상, 교장선생들에게도 한 상, 노조에도 한 상.

이렇게 고루 퍼주어서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 비겁자 강준만들의 소통법이다. 그렇게 하면 덩치 큰 중간보스들이 제각기 부하들에게 물림상을 내려서 더러운 돈이 순환되니 음지에 생기가 돌고 민심이 다독거려진다는 거다.

'소통? 별거 아냐. 덩치 크고 힘센 놈들에게 떡 한 덩이씩 던져주면 지들끼리 알아서 나눠 먹는다고. 조용해 진다구.' 이것이 지난 수천 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권위주의 세력의 뒷구녕 소통법이었다. 늘 그래 왔다.

그렇다. 노무현은 그들과 그 추악한 방법으로 소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강준만들이 노무현의 소통실패를 꾸짖는다. 그 더러운 입으로. 딴은 그렇다. 강준만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더니 음지에 감춰져서 조용히 넘어가야 할 온갖 자질구레한 문제들이 모두 공론의 장에 붙여졌다.

사회가 시끄러워졌다. 그래서 대선에 졌다. 다 노무현 때문이다. 사실이다. 인정한다.

스님은 단식하고, 핵폐기장은 반대하고, 새만금은 난리 나고, 부자들은 데모하고, 재벌들은 투자 안 하고, 교회는 시국기도회 열고, 교장단은 들고일어나고 온갖 말썽이 일어난 것이다. 노무현의 소통실패다.

종부세는 물론이고 분양가 상한제며 온갖 자질구레한 정책들이 모두 공론에 붙여졌다. 하다못해 바다이야기까지…. 언제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정책결정에 시시콜콜 목소리 내고 참여했나?

진실을 말하자. 저 더러운 지식 매판업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자. 진짜 소통은 사회의 온갖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모두 공론의 장에 끌어내어 서로 경쟁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소통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들은 이 새로운 소통법을 힘들어한다. 왜?

참여정부니까 참여하라고? 모든 정책을 토론에 부친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조금 더 떠들고, 더 데모하고, 더 파업하고, 더 목청높이면 우리에게 유리하게 결정될 텐데 우리가 양보한 것이 잘못이었나?

누구도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참여정부는 시민사회의 공론을 따른다고? 그런데 그 공론은 인터넷 잘하는 논객들이 주도한다고? 그럼 인터넷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네티즌과는 소통하고 우리와는 소통 안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조계종 종정 만나주면 사패산 스님들 조용해진다. 이것이 수구세력이 아는 권위주의 소통법이다. 이명박이 안가에서 김영삼 만나주면 김영삼 조용해진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하란 말인가?

노무현은 독대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밀실에서 거래하지 않았다. 그들 방식의 소통이 막힌 것이다. 뇌물이 오가지 않으니 지하경제가 동맥경화에 걸려서 차떼기 지하경제가 파탄 났다.

두 가지 소통법이 있다. 밀실에서의 소통법과 광장에서의 소통법이다. 둘은 양식이 다르다. 방식이 다르다. 코드가 다르다. 둘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쪽에 맞추면 저쪽이 뿔 내고 저쪽에 맞추면 이쪽이 골낸다. 어쩔 것인가?

역사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일부 기득권은 불편하겠지만, 밀실소통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광장소통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차피 양쪽을 다 만족시킬 수 없다면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부터 만족시켜야 한다. 그것이 역사다.

문제는 젊은이들과 통하는 광장에서의 소통법을 아는 정치인이 노무현 외에 없다는 데 있다. 온갖 은폐된 갈등을 모두 도마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수습할 수 있는 정치인은 노무현 한 사람밖에 없다는데 위기의 원인이 있다.

손학규도 못하고 정동영도 못한다. 그렇다면? 광장에서의 소통법을 아는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광장은 시끄러워야 한다. 옥동자를 낳을 때까지 진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짜 민주주의다. 두려운가?

쇠고기 문제가 가라앉아도 또 다른 문제로 터져 나온다. 촛불은 계속된다.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위대한 한 명의 새로운 지도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갈등은 끝없이 계속된다. 역사의 맥박은 그렇게 뛴다. 겁낼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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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들의 더러운 점은 노무현, 이명박더러 '니가 내 말 안 듣다가 망했는데 말 좀 들어라. 요렇게 하고 조렇게 하면 된다.' 하고 귀엣말로 사바사바 코치한다는 데 있다. 이건 정말이지 역사를 못 배운 자가 하는 소리다.

중요한 건 눈앞의 문제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지도자와 그 세력의 탄생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광장의 그들은 카나리아와 같아서 작은 충격에도 죽는다. 얼마나 많은 카나리아가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잘못된 협상은 재협상 하면 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막혀버린 숨구멍은 누가 뚫어줄까? 뚫어줄 새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사회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진정한 시민의 권력이 탄생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간다.

원문 - http://www.drkimz.com/bbs/view.php?id=notice&no=86


2008/05/28 23:03 2008/05/2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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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프에서 글 봤는데요. 속이 후련합니다.
    2008/05/28 23:39
  2. 당대 최고의 인터넷 논객이죠. 그의 글을 볼때마다 무협지 읽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 현안을 풀어내는 그의 내공은 그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
    2008/05/29 11:16